슬픔의 끝에서
堂本 剛
지난 호 인터뷰로부터 3일 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도모토 쯔요시가 <일본에 바치는 러브송>이라고 칭한 뉴 싱글 「縁を結いて」. 이미 들은 리스너는 조금이나마 지진 이후의 일본에 살고 있는 무게를 느끼면서 이 곡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말해왔지만 도모토 쯔요시에게 있어서의 음악 표현은 계속 스스로의 생을 잇는 생명줄이었다. 그는 음악활동 속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심연한 감동과 수수께끼에 감싸인 개념의 윤곽을 취하며, 그것을 울리고, 말하고, 체현하고자 해왔다. 필연적으로 그가 창조하는 음악이나 아트워크는 어느 것도 절실하며, 쇼킹한 면도 있다. 그 때문에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도모토 쯔요시의 음악은 일관되게 허심탄회, 즉 아무런 응어리도 없이 솔직하게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노이즈를 들어도 더욱 그의 음악은 언제까지나 리스너의 삶의 힘이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운 일본>이라고 하는 언뜻 장대하게 생각되는 테마를 들어 전신전령으로 울려퍼트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 「縁を結いて」가 릴리즈 되었습니다만 이걸 들은 리스너나 주위의 리액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웅............ 이 악곡은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테마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곡에 대해서 「바라지 않는다」로 있었기 때문에. 흔히 있는 말을 굳이 사용한다고 한다면 혼자 걸어가는 악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반응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라고 하는 테마와는 전혀 관계없는 반응도 잔뜩 있었고 말이죠. 그리고 이런 곡을 만들고 정치든 무엇이든 좀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를 더욱 사무치게 느껴버리고 마는 부분이 있네요.
─ 특히 지진이 덮친 일본의 지금의 상황이 더욱 그렇게 만드네요.
이것이 평범하게 러브송이라고 불리는 것이거나 팝스라고 불릴만한 것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감각이 자신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요.
─ 그러면 이 악곡은 지금까지 만든 곡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있다는 것?
그렇네요. 이 곡을 만들기까지에 체험한 시간이나 사건이 너무나 특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것을 한정된 가운데 문자로 하거나 텔레비전에서 이야기하거나 하면 대체로 <종교 같다>라고 생각되고 끝나버리고 맙니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딱히 저는 종교스러운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응.
태어난 고향인 나라에서부터 일본을 바라보고,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표현 활동을 어떤 식으로 시작해서 지금으로 이어져 있는가. 그런 것을 체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곡에도 뮤직 비디오에도 자켓에도 그런 마음을 담았고. 「뭔가 종교같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 자신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있어서 생활 속에 신사나 절이 있고, 거기서 손을 모으는 것이 생활의 일부로 되어버려있어요. 교토 사람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각각의 신사나 절에는 스토리가 있어서, 그 스토리에 접하고 이런 세계가 있구나,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나 슬픈 이야기가 있구나,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지금의 일본이 있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뿐, 그런 옛날의 정경의 끝에 현재의 표현 활동이 있는 것이고,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는 부분도 많이 있는. 저희들의 태도나 말이냐 행동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구나 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 그렇군요.
그리고 <縁を結いて>의 또 하나의 테마는 <음악의 시작>이었어요.
─ 곡의 인스피레이션을 얻은 텐가와 신사는 예능이나 음악의 신이라고 말씀하셨죠.
에에. 지금 우리들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어준다, 바친다고 하는 형태로 비지니스를 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옛날은 그런 것일리가 없기 때문에. 축사(주: 신도에 있어서 신을 모시는데 있어 신을 칭송하며 주상하는 문장. 많은 경우 독자적 가락에 의해 읽혀진다)가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만 옛날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축사는 백성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것이었네요. 노래나 언령을 어디에 던졌던 것이었을까 라고 생각했더니 자연에 감사하기 위해서 노래나 언령을 바쳤던 것이었던. 그래서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노래의 시작이란 매우 아름다운 마음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의 과학 지식이나 기술은 훌륭한 인간의 공적이기는 하다고 생각하지만 옛날 사람이 자연 숭배를 하고 있던 것 같은 감사의 마음은 점점 옅어지고 있네요
─ 네. 그건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모두가 외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네요.
응. 산을 보고 말이죠 여기에 신이 있는 느낌이 든다고 직감으로 거기에 토리이를 세우거나 쌀을 바치거나 했던. 그런 마음이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물론 신직(神職)은 아닌 사람까지 지금 그것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나 생각을 소중히 하고 싶네 라고 하는 이야기인거에요. 옛날 일본에 있던 아름다운 마음을 떠올리며 미래로 향해도 좋지 않을까나 라고 생각해서
─ 딱히 테크놀로지의 진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네요.
물론. 평소의 생활에서도 음악을 만들 때도 컴퓨터를 크게 사용하고 있고 말이죠. 다만 일본인이 잃어버리고 있는 감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일본인의 마음이거나, 고대 사람들의 DNA라든지. <縁を結いて>는 그런 것을 지금 한 번 생각해내면서 미래를 향해 글로벌로 나아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노래이며, 비쥬얼인거네요.
─ 제안이라고 하는 느낌?
맞아요, 제안. 그런 하나의 제안으로서 <일본에 바치는 러브송>이라고 하는 메세지로 노래를 바쳤습니다. 저는 일본인이란 직감력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나 신앙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곳에서 하츠모우데를 가거나, 신이나 부처님께 합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잖아요? 저기에 가서 참배를 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몰라, 라든가.
─ 파워 스팟이 일반적인 유행이 되고 말이죠.
그렇지요? 신사나 절에 기원하러 갔더니 무사히 그 일을 끝낼 수 있었다면 또 인사로 합장라러 간다든가. 그건 종교나 신상심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평범히 존재해야하는 모습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서
─ 그렇군요.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縁を結いて」 라고 하는 곡이 쯔요시상 안에서 어떤 마음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를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지금과 같은 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응.
─ 그리고 쯔요시상의 대중적 이미지와의 거리감이네요.
뭐 그건 계속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지만요
─ 그게 이번은 테마가 심플한 한편 델리케이트한만큼 그 거리감이 한층 더 두드러지네요.
그렇네요.
─ 거기에 더해서 쯔요시상은 자신의 창조성에 타협을 안하시지 않습니까. 메세지의 강함도 완화하지 않고. 뉴트럴할 부분이 없는. 일본인이란 그레이한 부분을 갖고 뉴트럴하게 있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려지는 점도 있기 떄문에 표현이나 메세지가 선렬한 것이라면 거기서 우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요. 거기에 일종의 코믹컬함이나 유머가 있다면 또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다를까나 라고도 생각합니다만.
아아, 저 나라인이 아니었다면 코믹컬하게 했을거에요 ㅎㅎ
─ 아, 그렇습니까.
원래 Funk나 테크노를 좋아하고 그런 면은 드러내기 쉽다고 생각하는.
─ 확실히 그런 요소를 가진 프로젝트도 하시고 계시죠. 마스코트 캐릭터를 세우거나.
응.
─ 다만 나라 태생이라고 하는 출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면, 진격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
되지 않을 수 없네요. 나라에서 태어난 제게 있어서 이건 특별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구 라는 감각이 강합니다. 나라는 관광객들도 어디에 가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어 같은 느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흘러가는대로 다다른 곳이 사실은 자신의 성씨와도 연결고리가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때 인간이란 <여기에 와야만 했기에 온 걸까나>라는 기분이 되거나 하는거네요. 저도 그런 신기한 경험을 잔뜩 해와서. <그런거 누구한테 얘기한들 믿지 않을테고 말이지>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신기한 체험의 이야기를 해서 종교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도 아니니까.
─ 그렇네요. 직접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앨범의 곡을 틈틈이 만들고 있는 참입니다만 그건 <縁を結いて> 정도로 파고든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SHAMANIPPON>이라고 하는 가공의 나라를 만들어서 놀고 있어서. 거기에 대한 반응을 보고 있으면 <도모토 쯔요시가 종교스럽다>라든가 여러 트윗이 바앗 하고 있어서. 그런 한편, 팬 분들께서는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도 인터뷰에서 읽어주시고 계시고, 음악도 들어주고 계시고, 라이브에도 와주시고 계시고, 순순히 <아아, 뭔가 또 재미있는 것을 하려고 하고 있구나>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주고 계시다고는 생각합니다만
─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지금이 이야기를 돌연 듣거나 알게 되거나 하면 강렬하네요. 여러 오해가 파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는.
다만 강렬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니까 말이죠.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 그래서 생각했습니다만 나라 관련으로 말하자면 저 강렬한 임팩트란 센토군에 가깝지 않을까나 하고 ㅎㅎ
아하하하하하
─ 센토군도 처음은 <우왓, 엄한게 나왔네!> 같이 되었었습니다만 지금은 인기있는 캐릭터이지 않습니까ㅎㅎ
센토군말이죠. 처음은 엄청나게 구설수를 들어서 불쌍했었네ㅎㅎ 하지만 센토군, 나라의 캐릭터 중에서는 아쉽게도 굿즈 매상같은 건 1위가 아니에요.
─ 아, 그래요?
확실히 만토군이 1위로.
─ 만토군! 그런 캐릭터도 있구나ㅎㅎ
센토군에서 만토군까지 가버렸어요ㅎㅎ
─ 나라도 여러 가지 생각했던거겠죠ㅎㅎ
너무 생각한다고ㅎㅎ 뭐, 그게 나라다운 점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네요. 하지만 전에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누구에게 어떻게 생각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제 자신도 강해졌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그건 어떨까나?>라고 의문을 가져버리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제 표현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뭔가 저 녀석 종교스럽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도 또한 정답이니까. 다만, 거기서부터 이상한 것이 생겨나지 않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들게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표현이나 만든 노래는 아니기 때문에
─ 불쾌한 기분을 주고 싶은 것이 아니고 말이죠.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의 바람을 담고 있다고 할까.
응. 그러니까 싫은 기분을 주게 되어버리고 말았다면 죄송하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것을 말하다보면 창작은 영원히 불가능해지니까.
─ 그건 크리에이티브의 진리이네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어려운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하이하이 네네>라고 생각하며 패스해가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란 만들어낼 수 없네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이거야 라고 제 안에서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에.
─ 악곡에 자신의 생각을 맡기고 있다는 자신감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저 개인의 의견으로서는 SHAMANIPPON에 접하기 전에, 처음부터 「縁を結いて」 라고 하는 곡을 들어주시는 편이 쯔요시상의 생각은 다이렉트하게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죠. 이 곡은 음악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의 노래라고 생각하니까.
그렇네요. 지금의 제 환경 속에서는 음악이 가장 자신의 생각을 담기 쉽네요. 환경이 변하는 일이 있다면 음악 이상으로 심플한 말이나 사진이나 서책이라든지 그런 것으로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제가 일개인으로서 일으키는 액션은 <쟈니즈인데>라든가 <아이돌인데>라는 말이 연연 붙어있으니까요. 그렇달까 저, 이미 32세입니다만 (쓴웃음)
─ 다만 그 부분이 쯔요시상의 표현을 지금도 큰 필드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네요. 그것이 계속 큰 벽으로도 되어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그렇네요. 이 세계에서 계속 해와서 좋았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음악과 만났다고 하는 것이 우선 큽니다만, 하지만 동시에 Funk 뮤직 라이브를 해서 연일 사람이 3천명 가깝게 온다고 하는 저런 느낌은 (다른 곳엔)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 그렇네요.
응. 팬 분들의 존재.... 제 인생에 대해서 이만큼 여러 가지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해주거나 하는 사람이 엄청 있다는 인생이 된 것은 매우 큽니다. 그것이 괴로운 시기도 있었지만 저 자신을 백업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도모토 쯔요시란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여러 사람에게 설명해주고 있거나 하는. 제 자신이 <저, 사실은 이런 인간입니다>라고 말하면 <뭔가 도모토 쯔요시가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든지 <이미지와 달라>라고 되어버립니다만. 팬 사람이 <쯔요시군은 이런 사람이고 그것도 그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같이 소개해주기 때문에 정말로 고맙네 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응.
그래서 이건 마이너스한 의미가 아닙니다만 계속 예능계에 있자고 생각하면서 살고있지 않아요. 자신의 환경에서부터 따라오는 여러 가지를 잘 조정하면서 공존시키면서,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절대 관철하는. 그런 방법론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인거네요, 지금은.
─ 조금 이야기는 바뀝니다만 얼마전(3월 25일) 「뮤직 스테이션」에서 「縁を結いて」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지진 이후라고 하는 것과 이 노래의 내용도 맞아 떨어져서 그 때 쯔요시상이 노래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저 때 어떤 심경으로 노래하셨는지요.
이것도 오해 없도록 말하고 싶습니다만... 출연의 이야기를 받기 전에 저, 텐가와 신사에 합장하러 갔었어요. 이번 지진으로 일본 전체의 사람이 여러 깨달음을 얻고 여러 시간을, 여러 인생의 변화를 맞딱뜨리거나 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뭔가 액션 일으키는게 좋을까, 그것이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했었네요. 그래서 우선 자신의 고향, 일본의 시작인 장소인 텐가와 신사에서 손을 모으자 라고 생각해서
─ 역시 뭔가 행동하지 않고 있을 수 없었던?
응. 그래서 「<縁を結いて>라고 하는 곡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미소를 되돌리는 계기가 되도록」이라고 빌고. 미소를 되돌리기 전에 많은 눈물이 흐를지도 모르지만 그 다음에 많은 용기나 미소, 희망이나 빛이 생겨나 언젠가 또 새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하늘을 모두가 올려다 볼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경내를 나와 차에 탔을 때 정말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만, 「뮤직스테이션」의 오퍼가 <갑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이라는 것으로 날아들어와서
─ 저 출연이란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는 것?
네. 그래서 노래하게 해주셨습니다만. 처음에 생각한 것은, 방송 중에 지진에 대한 스위치가 완전히 들어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그 온도차에 저는 망설였었네요. 제가 거기서 낸 대답은 평범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인가 한다면 실제로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으니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여 노래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다고해서 지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자숙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너무 하면 경제가 돌지 않는 부분도 있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편이 우선 먼저겠구나 라고 저는 생각하는. 필요 최저한의 생활의 지원을 우리들이 보내면서 경제를 제대로 움직여가지 않으면 안되는. 그 가운데에서 피해당한 분이 조금이라도 현상을 좋게 해갈 수 있도록 이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일개인으로서 마음을 바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텐가와 신사상에 손을 모으러 가자고 생각했던 것과, 노래할 때도 이 곡에 담은 <아름다운 일본을 생각해내자> 라고 하는 처음에 만들었을 때의 기분을 소중히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피해지에 전해져라>라고 생각하면서 노래하는 것은 틀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사랑한다>고 하는 마음이거나 그런 마음으로 대지나 자연에도 사랑을 주어간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쓴 노래였으니까. 그런 마음 하나로 노래했었네요.
─ 이야기는 순서가 바뀝니다만 지진이 일어났을 때 쯔요시상은 어떤 상황에 있으셨습니까?
저 자신은 도쿄의 고층 빌딩에 있었던. 흔들림도 굉장했고, 서있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첫 번째 지진이 수그러들었다고 생각했더니 또 강한 여진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 때는 정말 오로지 흔들림을 버틸 수 밖에 없어서. 과호흡으로도 되어버렸고.
─ 그런가. 괴로우셨겠네요.
응. 흔들림이 안정되는 것을 오로지 기다리고. 흔들림이 잦아들고 계단으로 건물을 내려가서. 같은 건물에 한신 대지진을 경험하신 분도 계셔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더니 <저 때 이상의 흔들림이었습니다>라는 말에 무서워져서. 거기서부터 여러 보도를 볼 때 마다 저는 무서운 생각도 했고 과호흡으로도 되었습니다만 그건 작은 것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서. 하지만 보도를 보고 얼마큼의 것이 우리들에게 진실로서 전해지고 있고 얼마큼의 것이 숨겨지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도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피해당한 분들은, 당연하겠습니다만 제가 모르는 분들뿐이어서.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팬분들도 계실 것이 분명하고.... 그 사람들이 정말로 정말로 구조될 수 있도록 이라고. 그것만큼은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노래하게 해주셨을 때는 피해지에 전해져라 라고 하는 노래 방식은 아니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노래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었네요. 그리고 그 모습이나 사운드나 메세지가 인연을 엮어 일본으로, 세계로 펼쳐져가는 것을 이미지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지에 한정되지 않고.
─ 피해지에 있는 사람 중에 실제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것은 상당히 한정되어있고 말이죠.
그렇네요. 다만 <아슬아슬하게 한 세그가 부활해서 볼 수 있었다>고 하는 팬 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 그런가. 그건 다행이었네요.
응. 그리고 <「뮤직 스테이션」날에 친구가 천국에 갔습니다> <오늘은 쯔요시상의 싱글 발표일이었습니다만 정말 좋아하는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라든가 그런 것도 있어서.... 정말 말이죠, 여러 사람이 여러 시간을, 여러 타이밍에서, 여러 자세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네요.
─ 그렇네요.
거기서 심플하게 생각한 것은 일본이라고 하는 대지 위에 저희들은 살고 있는 것으로. 하지만 여러 가지를 편리하게 해가면 해갈수록 오차는 나와버리고 마는구나 하고. 하지만 그 오차를 채울 접착제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인간이라고 생각하네요. 논리만으로 되어가면 자연은 잘 공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논리가 아닌 자연과, 논리가 아닌 우리들이, 논리를 딱 좋은 밸런스로 메워가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직감력을 소중히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저 사람이 좋다고 말하니까 이건 좋은거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 녀석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라고 하는 정도의 직감력을 가져도 좋을텐데, 라고. 일반의 의견이나 의사를 존중한 상에서 「나는 여기에 아름다움을 느끼니까 그걸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되는.
─ 응.
이런 현상이 있고, 일본은 지금까지 보다 좀 더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만 그 전에, 각자의 의견이나 의사를 확실히 갖고 그 위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라고 생각하는.
─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차하고 있는 진실과 거짓을 자세히 조사하면서 책임을 갖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의식도 확실히 확산되고 있네요.
그렇네요.
─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는 누군가가 좋으라고 생각해서 실행한 행동이 일종의 폭력으로도 될 가능성도 크게 있어서.
응.
─ 그럴 때 자신의 의사와 타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공존시키는 것으로 무언가 하나의 희망을 갖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매우 이해가 되네요.
앞으로 해야만 하는 것은 그 것이라고 생각하네요.
─ 그러면 그것을 향후의 음악 제작에 어떻게 반영시켜 가고 싶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만 인스트가 매우 많네요. 집에서 LOGIC(음악제작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여러 가지 하거나 실제로 악기를 쳐서 만든 곡도 있습니다만 가사의 성격도 스스로 봐보면 <엄청 큰 것을 노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이전에 아스카 료상이 「이제 사랑밖에 부르고 싶지 않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저도 가사를 쓸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여서.
─ 거기에 의지나 메세지가 있는 것, 구체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까.
그러니까 아무래도 인스트가 많아지는. 그런 가운데 <縁を結いて>라고 하는 곡은 탄생했습니다만. 가사가 있는 곡을 쓰는 편이 좋다고 하는 액션을 스스로 일으키지 않으면 말을 쓸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감각이 있어서. 말을 찾아가는 가운데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가사로는 점점 아니게 되어 오고 있구나 하고. 리스너가 상상해주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되어 있는.
─ 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계속 마주해온 것이 아닙니까.
맞아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핀트를 맞춰왔습니다만 점점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자신 안에서는 말로 할 정도까지도 아닌 것으로 자라나버려있네요. 그것을 거쳐 지금은 생명이라고 하는 테마로 곡을 만들거나 가사를 쓰거나 할까나 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사랑이란 말은 어딘가 드라마틱감이나 스위트한 뉘앙스도 있잖아요? 하지만 생명이 되면 엄청나게 현실적이에요.
─ 애매한 점이 일절 없지요.
응. <縁を結いて>도 논리가 아닌 것을 노래하자고 생각해 만든 곡이니까. 저의 고동도 언제 멈출지 모르잖아요. 사람의 심장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균 연령으로 대체로 이 정도 고동을 칩니다 라는 데이터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맞아떨어질지 같은 건 모르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부분으로 말하자면 저 그다지 마취가 듣지 않는 체질이어서. 치과에 가서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듣는 마취여도 듣지 않아요. 그건 논리도 데이터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력이란 그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뭔가의 위험을 찰지해서 마취를 듣지 않도록 하는 능력이 움직이기 쉽다고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이란 사람 각자가 있잖아요.
─ 있지요.
<화재 현장의 굉장한 힘>이라는 말이라든가. <어째서 저 때 저런 무거운 짐을 들었을까?>같은 느낌이라든가. 그런 인간의 힘이란, 논리가 아니고 그 인간이 살아있는 것, 죽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생명이니까. 생명이라고 하는 키워드 속에 무언가 액션하고 싶네 하고.
─ 다만 생명이라고 하는 키워드도 사랑을 노래하기 이전에 계속 도모토 쯔요시의 테마의 근원으로서 따라다녔던 것이네요.
응. 따라다녔어.
─ 한 번 진심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음악과 만나서 구원받고 살아가는 힘 그 자체가 되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정면으로 생명과 마주했습니다.
─ 그러부터 음악을 통해서 여러 뮤지션이나 방법론과도 만나고 Funk를 울리도록 되어서. 지금 일본 전체를 보도록 되어있는 것은 음악에게 구해져, 생명을 이어간 자신이기 때문이야말로 표현 가능하다고 매우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네요. 개인의 생명에서부터 점점 큰 생명을 이해하도록 되었구나 하고. 「縁を結いて」에서부터 또 쯔요시상의 말의 이모저모에 느끼고 있습니다만
응, 그런 것이네요. 처음은 자신이 말이죠 갑자기 패닉 디스오더(패닉 증후군) 라고 하는 병이 되어서
─ 첫 솔로 앨범 (「ROSSO AZZURRO」)에서도 동명의 곡을 만드셨죠.
응. 저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 체온 조절이 안되거나 현기증이 나거나 갑자기 과호흡이 되어서. 인간의 신체란 정말로 여러 가지가 일어납니다. 로보트가 아니지만 정밀한 기계같은. 한 개 망가지면 이렇게나 무녀져 가는구나, 라고. 단순함과 치밀함이 있어서.
─ 저항할 수 없는 연속성과 말이죠.
응. 놀래버렸던. 하지만 점점 그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어온. 정밀한 가운데에도 단순함은 있고 단순함 속에도 정밀함이 있구나 하고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느끼고 있었네요.
─ 다만 당시는 거기까지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자신을 봤고,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했고, 상냥함을 받기도 했고. 그렇게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서. 그래서 자신이 Funk 뮤직과 만나서 Funk를 울려가는. Funk 뮤직을 어째서 울리고 싶다고 생각했는가라고 한다면 파괴력이라고 하는 말이 그다지 맞아떨어지지 않는, 빛나는 태양이라든가 내 안에서만 울리고 있는 희망이라든가 그런 것을 느꼈기 때문이어서. 그래서 나는 Funk 뮤직을 울려야만 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던. 처음은 보고 흉내내면서 그 안에 들어갔고. 그러자 Funk 뮤직 덕분에 눈 앞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이 라이브에서 나타나고. 그 때까지 서있던 스테이지에서는 관객이 춤춘다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이건 정말로 기뻐서.
─ 리듬에 맞춰서 춤춘다는 건 딱 바로 살아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원초적인 행위이고 말이죠.
맞아 맞아. 그런 것을 알려주어서. 역시 리듬을 울리는 것, 소리를 즐긴다는 것이란 정말로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여러 시련, 갈등, 벽과 마주보고 있었던. 주위의 멤버의 애정에 뒷받침 받아가면서
─ 정말로 훌륭한 뮤지션들과의 만남이 있었네요. 스티브 에토상도 그렇고 타케우치 토모야스상도 그렇고 KenKen도 그렇고.
네, 그들이 제 마음의 안정을 그려주어서. 여러 가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깨달아보니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있어서. 인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로 사랑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구나 하고 생각했던. 스테이지에 서있어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노래하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매우 느끼고 있고. 자신의 생명이 움직이고 있고, 살아있고, 노래하고 있고, 소리를 내고 있는 그런 감각. 그런 것이란 정말로 뮤지션의 사치인 시간으로. <지금, 살아있어!>라고 전신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인거네요. 지금은 그걸 소리나 비쥬얼로 바꿔가면서 사랑을 초월한 생명이라는 것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래서 생명에 대해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그 가운데서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음악을 해갈 수 있다면 자신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가며 리스너에게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나 하고. 앞으로 마주봐갈 것은 그런 부분이네요. 그리고, 조금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고기를 먹는 것을 그만두고 벌써 2년 정도가 되요.
─ 벌써 그렇게 되는구나.
계속 안먹고 있어요. 고기를 먹는 것을 멈추고나서부터 목소리도 나오도록 되었고 직감력도 붙은듯한 느낌이 들어서.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가 시작되어 갔기 때문에 그대로 계속 먹지 않았던. 하지만 지금 4월 10일 생일에 고기를 먹을까 안먹을까로 고민하고 있네요ㅎㅎ
─ 저같은 경우는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ㅎㅎ
아하하하하
─ 어떤 이유로 고민하십니까?
이유는 두 가지 있어서. 모처럼 멈췄는데 먹을 이유는 그다지 없는. 그런데 먹는 것은 어떨까 싶어서. 만약 여기서 고기를 먹고 직감력이 둔해지면 싫은데 말이지, 라고. 연주를 하고 있어도 망설임이 전혀 없어졌기 때문에. 그건 고기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음악을 하면서 흔들림 없는 느낌에 망설임이 생겨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것을 생각하거나 한다든가. 또 한가지는 단순히 그렇게 먹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ㅎㅎ
─ 하하하하 뭐에요!
하하하하. 이야, 하지만 먹으면 어떤 느낌으로 될까나? 라고 하는 지금의 느낌을 유지할 것인지 알고 싶다고 하는 것도 있어서.
─ 좋아, 자아 먹도록 할까 ㅎㅎ
먹는다고 한다면 햄버그를 먹을까나 ㅎㅎ
─ 아아, 햄버그는 문제 없네!
3개월에 한 번 정도, 맛있어 보이는 햄버그 사진을 봅니다만, 맛있겠네 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고기 요리네요.
─ 기본적으로 맛있지 않은 햄버그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죠 ㅎㅎ
웅ㅎㅎ 야키니쿠 같은 요리는 딱히 맛있어보이네 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야키니쿠를 그만두면 되는 거였네요. 야키도리 라든지 ㅎㅎ
─ 아아, 직접적으로 고기를 먹는 것을....이라니 무슨이야기인거야 이거 ㅎㅎ
아하하하하 이야, 하지만 말이죠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식생활이 변해가는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비지니스의 존재 방식도 변해올지도 모르고. 식생활과 비지니스의 존재 방식이 변한다면 인간의 생활이란 대부분이 바뀌지 않습니까. 어디에 살고 있어도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고. 음악 업계도 변화해가려나, 이대로일까나, 어떻게 되어갈까나 라고 생각합니다만
─ 음악업계도 바뀌지 않을 수 없는 기로에는 서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음악 그 자체가 가진 매력이나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상론적인 경지까지는 나오지 않겠지만 오히려 앞으로 음악의 본질적인 힘에 스포트가 맞춰지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나 하고 생각하고 있네요.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의 반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쯔요시상은 자신의 음악이 리스너에게 무엇을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는 음악이란 애초에 건강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제가 만들고 있는 악곡의 본질은 슬픔의 맨 밑바닥에 선 사람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한다고 하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사에서 선택하는 말도 아무래도 그런 것으로 되는 경향이 있어서
─ 자신이 거기서부터 일어섰기 때문에
맞아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이 이해해줄 법한 악곡으로는 되어있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맨 밑바닥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거기서부터 빠져나오게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악곡을 만들고 있어서
─ 그런 자신의 음악의 본질을 아직아직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죠?
에에. 다만 「나, 이런 음악을 하고 있어요」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좀 더 여러 스테이지에서 자신의 음악을 바치는 것으로 널리 전해져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만 자신의 옆에 있어주는 팬분들이 체감해주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받은 편지같은 것을 읽고 있다보면 본질이 전해지고 있구나 라고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아픔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 제각각이어서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구하려고 하는. 다만 그만큼의 생각을 음악에 담는 것은 가능하다고 믿고 소리를 울리고 있네요. 그래서 바라지는 않는. 이 음악을 듣고 이렇게 되어주세요 라고 바라는 것은 일절 하지 않으니까.
─ 어디까지나 바친다는 감각인거네요.
응. 정말로 오로지 바칠뿐이지만. 내가 바치는 장소가 조금 더 늘면 좋을텐데 라고는 생각하지만.... 지금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이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을 매우 생각하면서 매우 진지하게 마주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풀이죽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는.
─ 그 상태에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 라는 것은 없는 것이고 말이죠.
응. 일본인이라면 누구나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당연한 사건이 지금 일어나 있는. 거기서 저는 자선으로 돈을 내거나 물자를 보내거나 하는 이외의 것도 생각해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물론 의연금이나 물자를 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일 동료라든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의 케어에도 눈을 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반복이 되지만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시켜주셨을 때도 실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縁を結いて>에 담은 <아름다운 일본을 떠올리자>라는 처음 만들었을 때의 마음을 소중히 해서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으로 불렀습니다. 도쿄도 상당히 패닉이 되어있었네요. 어른 중에서도 「무섭다」라는 전화를 걸어왔어요. 「괜찮아요. 저도 무서웠어요」라고 말하고. 모두 각자 무섭다, 무섭지 않다, 괜찮다, 괜찮지 않다, 라고 하는 수용력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건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없었기 때문에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 각자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다 라고 하는 아까의 이야기와 이어지네요
응. 저는 고소 공포증입니다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아서. 사람의 감수성은 정말로 다양하니까.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수성을 중시하고 싶고 그것을 위해서도 우선 자신의 주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냥하게 해줄 수 있을까를 실행하고 싶네요.
─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어 간다고.
맞아요. 음악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함께 소리를 울리자고,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선은 앞으로 시간을 들여 앨범을 만들면서 좋은 타이밍에 릴리즈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일본에서 만들고 싶은 것은 이것이야, 라는 감각을 담은 악곡이 늘어선, 자켓이나 아티스트 사진에서부터도 메세지가 전해져오는 것을 크리에이트하고 싶네요.
─ 매우 기대가 됩니다만 앨범은 여러 뮤지션이 참가하는 것으로 될 것 같나요?
네.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아웃라인은 제가 만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 정도로. 하나, 둘로 녹음하는 듯한 악곡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만들고 싶은 것만을 만들고 엄선해갈까나 하고.
─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스트도 꽤 재미있는 악곡이 나올 것 같아요. 기대해주세요.
Editor's File
원래 그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 이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믿지는 않았었다.... 이야, 오히려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이나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지만, 도모토 쯔요시에게 있어서의 음악은 이 세계에 남겨진 유일한 구원이며 단 하나의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야말로 배신당하거나, 가만히 있으면 물건처럼 취급당해버리는 상황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만난 것이 음악이며 기타였다. 자신이 단 하나 믿을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빛이나 희망을 강하게 느끼는 Funk 뮤직에 심취해 가게 된다. 다만 그 사운드뿐만이 아니라 Funk라고 하는 장르가 낳아온 세계관이야 말로 그를 허락해주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Funk 뮤직이 가진 댄서블한 측면이 라이브에 있어서 그가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리얼함으로 사람과 이어진 실감을 주었다. 그는 천천히 <믿는 것>을 허락해간다. 배신당하는 것이 무서워 떨고 있던 감정에 천천히 발을 내딛어간다. 그것은 취재 상대인 우리들에 대해서도 그랬다. 당초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만을 뱉어내고 가는 그런 관계였던 서로가 그의 음악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간다.
음악을 통해서 재인식한 인연. 라이브를 통해서 실감한 연결. 거기에 있는 것을 신뢰 라고 부르지 않고는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것이 그 안에서 의식의 변화를 일으킨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만든 노래에 띄웠던 독백이, 지금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로 흘러넘치고 있는 것이니까. 진정한 자신을 알아주었다. 그 실감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야말로 그는 태어난 고향인 나라에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그 시선이 다음으로 <일본>이라고 하는 전체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메세지를 담은 곡이 「縁を結いて」인 것이다.
무엇이라고 할 타이밍일까, 이 악곡이 릴리즈된 3주간 전, 지진이 일본을 직격했다. 절대적, 또한 압도적인 자연의 위협을 눈 앞에 하고 무력감 속에서 누구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고 있던 선의라고 하는 이름의 상냥함이 얼굴을 내밀었다. 트위터에서는 생존 정보나 물자 정보를 누구나가 공유하고자 하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의 없이 의식하고 행동했다. 그 모습이야말로 <縁を結いて 生きている(인연을 묶어 살고 있어)>라고 하는 것이며 <与えたい、叶えたい(주고 싶어 이루고 싶어)>라고 하는 마음이기도 하겠지. 약 2년 전에 만들었던 악곡이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깊숙한 곳에 갖고 있는 이 마음을 그는 노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진으로부터 2개월 가깝게 지나고 모두 그 마음을 또 가슴에 가두려 하고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의 문화가 토양에 있어 그것이 시대를 반복하는 가운데 목소리를 올리지 않는 미덕이라고 하는 것으로 스리슬쩍 변해갔다. '누군가가 말하겠지' 같은 것이다. 「縁を結いて」는 그런 상황을 선동해서 바꿔가자는 목소리를 높이 외치거나는 하지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다가가 속삭여준다.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것, 철해두고 있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없는가 하고. 분명 그것은 누구의 안에도 있는 것으로 그 마음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음악에 구원받고 이렇게 지금 즐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인연이 존재한다. 그리고 확실히 이어져 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맞서간 인간이기 때문이야말로 그것은 손에 넣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縁を結いて」는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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