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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一 51/エンタテイナーの条件

[도모토 코이치] 160804 엔터테이너의 조건 # 37 가속하는 리스크헷지, 감속하는 크리에이티비티

by 자오딩 2016. 8. 20.

エンタテイナーの条件 * 엔터테이너의 조건

 

# 37

 


加速するリスクヘッジ、減速するクリエイティビティー

가속하는 리스크헷지, 감속하는 크리에이티비티

 

 

 

  얼마 전 음악 특방에서 오랜만에 「제트코스터 로망스」를 불렀습니다. 여름의 항례 곡으로 소개되어 KinKi Kids에게 있어서도 대표곡의 하나입니다만, 이 곡은 한 시기 불러서는 안된다고 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후의 라이브에서 가사가 쓰나미를 연상시킨다고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상하게 타협하는 편이 좋지 않겠다고 생각한 저는 「생각이 과한 거 아냐?」라고 말했습니다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그때는 보류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뭐, 지금 거론한 것은 누구나가 이해 가능한 예입니다만, 일본의 제작 현장은 지금 컴플라이언스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답답하게 되어있다고 듣습니다. 정말로 세세한... 예를 들면 드라마에서 악역이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린 것만으로 클레임이 온다, 같은 건 확실히 과민반응이죠. 그 외에도 강도가 차를 타고 도망칠 때 안전벨트를 한다고 하는 것도 보면서 부끄러워지고, 그런 장면이 나온 시점에서 조금 식어버리고 맙니다.

 

 

 

잔혹한 묘사가 많은 해외 드라마

 


  해외 드라마 쪽을 보면 세계적으로 대 히트하고 있는 「The Walking Dead」도 「Game of Thrones」도 일본이라면 절대 방송 불가능할 것 같은 잔혹 묘사 투성이입니다. 「Game of Thrones」은 섹스 신도 많은. 그래도 확확 빠져드는 것은 「리얼하기 때문」 이 전부이지 않을까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비해서 아직 아직 자유가 남아있는 것이 무대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앞에서 상연하기 때문에 불을 사용한 연출이나 통로의 확보 등 소방법에 의한 규제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말의 표현에 관해서는 영상 정도는 아닌.    

 

 

  예를 들면 「Endless SHOCK」의 극중극 「리처드 3세」에서는 「절름발을 절뚝이며 걷는 것을 보면 개도 짓는다 (びっこを引き引き歩くを見れば犬も吠かかる)」라고 하는 대사를 채용했었습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인권 감각이기 때문에 작품을 리얼하게 연기하기 위해서는 말은 오리지널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그 대사는 없애버렸습니다만 누군가에게 하지 말라고 들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작품을 바꿔가는 가운데 「자아, 여기를 컷트할까」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텔레비전은 말의 표현에 매우 엄격해서 최근이라면 「애꾸눈(片目)」이나 「외팔(片手)」도 「한 쪽 눈(片方の目)」「한 쪽 팔(片方の手)」라고 바꿔 말합니다. 뭐, 만약 그 말을 듣는 것으로 상처 입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면, 오해 없는 말투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이해 가능합니다. 저는 그 작업은 힘들지도 귀찮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 이외의 잘 모르겠는 것들입니다 ㅎㅎ 예를 들면 오카마에 대해서 「오카마가 아니라 오네에라고 말해 주세요」라든가. 이야, 같은 거잖아! 오네에라고 고쳐 말하면 거기에 차별의식은 없어지는 건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도 소위 오카마짱은 있습니다만, 자주 만나는 일 동료에게는 친애의 정을 담아 오카마라고 부르고 있어요. 「오카마라면 오카마답게 하라고!」라며ㅎㅎ  그거야말로 이 시대, 이미 평범한 존재이고, 저와 그 상대는 서로 인정하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농담의 뉘앙스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부풀어 오른 종기 만지듯 조심조심하며 터부시 해버리는 쪽이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최근은  「말 사냥(言葉狩り)」을 두려워한 나머지 본질을 애매하게 한 채 「혼날 테니 그만두자」로 되어버리고 있는 부분이 불건전, 또한 안타까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하고 있으면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하면 안되고, 무엇이 괜찮은 것인지」의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되어가지 않을까나 하고.

 


  고백하자면 ─ 저 자신도 초등학교 때 장해가 있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이 그 말을 차별적인 기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 「그것은 잘못했었다」고 분별할 수 있도록 되었던. 계속 사라지지 않는 죄악감과 함께.

 


  그런데 그런 경험 없이 어른이 처음부터 「안되는 말」을 배제하다 보면 아이는 무엇이 어째서 안되는지를 실감하지 못한 채 자라나지는 않을는지? 그쪽이 더욱 무서운 일이지 않을까나... 라고 저는 생각하지만요.

 

 


당신에게 한 말이 아냐

 

 

  최근엔 성희롱도 자주 문제가 됩니다만, 이것도 「과민반응이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주 있는. 「SHOCK」의 무대에는 13년간 계속 서준 독신 여성 캐스트가 있습니다만, 저는 어느 때 그녀에게 「빨리 결혼하지?」라고 말했습니다ㅎㅎ 이거, 일반사회에서는 완전히 아웃이지요?

 

 

  하지만 이건 저와 그녀 사이에 오랜 시간의 신뢰 관계가 있기 때문의 장난이어서 「너도 결혼 못하잖아!」라는 츳코미를 기다리는 것 같은 점도 있는 ㅎㅎ 설명하는 것 자체가 멋이 없습니다만 반대로 13년이나 여자로서의 행복보다  「SHOCK」의 일을 우선하고 공헌해주었다고 하는 리스펙트가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 도의회에서 일어난 여성 의원에 대한 「빨리 결혼해라」의 야유와는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그건 안되는 거죠. 말이란, 같은 말이어도 상대와의 관계성에 의해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저의 발언에 대해서 제 3자로부터 클레임이 온다고 해도 「이야, 당신한테 한 말이 아니라고」일 뿐인 이야기ㅎㅎ 제가 동료에게 한 농담에 대해서 타인이 기분 나빠진다면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사람 앞에 서는 인간으로서, 「누구 하나 상처 입지 않는 표현을」이라고 하는 이상을 내거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불가능하지요. 예를 들면 저는 「더운 곳 싫어」라든가 「이미 지쳤어」라든가 텔레비전에서 늘 말하고 있습니다만,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건강한 주제에 사치스러운 말을 하네」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리네요.

 

 

  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넷 같은 데서 비난을 받아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제 자신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이쪽의 마음까지 전해져 오질 않는걸.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고 한다면 직접 만나서 자세하게 들려달라고 하네요ㅎㅎ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역시 이 일을 하는 가운데 단련된 것이려나요.

 

 

 

정공법으로 되돌아보는 마음가짐을

 

 

  일본인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국민성이라고들 합니다만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소망은 일본의 예능계가 상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외람된 줄 알면서도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일본의 예능계는 순수한 실력 사회는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무엇이든 오디션이 일반적이죠. 그 차이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만드는 측도 그렇고, 보는 측도 실력주의를 바라지 않는. 작품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보다 「저 사람이 나오니까 본다」고 하는 생각의 사람 쪽이 아직 아직 압도적으로 많네요.

 

 

  그리고 그런 미지근함이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 「비난받고 싶지 않아」라고 하는 방향으로 과민반응시키는 요인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하고. 「뭐야 젠장 나에 대해서 비난한 녀석들을 연기력으로 다시 보게 해주겠어」라든가 「퍼포먼스로 찍소리도 못하게 해주겠어」라든가 그쪽의 발상으로 가기 전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버린다고 할까.... 그런 것은 「쟈니즈 사무소의 탤런트」라고 하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아첨을 받아온 몸으로서 자-알 알고 있습니다ㅎㅎ

 

 

  그러니까 결국, 과한 자주 규제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탤런트 개개인의 엔터테인먼트 정신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라도 무엇이든 환영해주는 팬분들은 물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팬 이외에도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기면 그것이 결국 팬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되는. 그렇기에 저는 평소, 저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시선을 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뭐, 저 같은 것이 대단하다는 듯이 말할 것도 아니지만요. 다만,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면서 미래를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이번달 매모

 

부탁이니까 적어도 이 지면에서!

 

도모토는 사무소의 공식 블로그를 갖고 있지만 갱신은 연에 2, 3회로 상당히 무정. 사무소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생활에서의 SNS는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화제로 하자  「그것 자체를 처음으로 알았어. 애초에 내가 그런 걸 하지않기 때문에 스태프도 말하지 않은 거겠네ㅎㅎ 하지만 말야, 자신이 뭘 먹었다든가 뭐가 즐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나는 오히려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아!」 연재를 갖고 있는 잡지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가끔은 엔터! 편집부도 듣고 싶습니다. 그-런- 부드러운 이야기. (편집부)

 

 

2016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