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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 244/雑誌

[도모토 쯔요시] 110331 ススめる!ぴあ 4/14号 + 번역

by 자오딩 2017. 4. 6.





제로(Zero)의 계절


「떠올리는(思い出す)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조용히 말을 했던 것은 지진 2일 전이었다.

음악은 슬픔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사람들의 구원이 될 것인가?
도모토 쯔요시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지금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 노래는 적어도 4개의 계절을 여행하고 있었다. 타이틀은 「縁を結いて」. 작사/작곡/편곡은 도모토 쯔요시. 2010년 봄에는 레코딩 되어 릴리즈 할 수 있는 것이 완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 후의 봄, 보컬 부분을 재녹음한 것이다. 게다가 선택된 장소는 한층 더 떠 통상의 스튜디오가 아닌 일반적으로는 녹음에 적합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야외. 그 노래되고 있는 테마는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의 존재 방식. 앨범이라고 하는 포맷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솔로 활동을 계속해온 남자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형태 파괴적인 싱글, 그것이 「縁を結いて」인 것이다. 어째서 도모토 쯔요시는 이렇게까지의 시간을 들여서 불과 1곡에 도달하고자 했던 것일까.

 

 

─ 우선은 경솔한 의문으로부터입니다. 어째서 보컬 부분을 야외에서 재녹음 하셨나요?
간단히 말해버리자면, 신사에서 노래하고 싶었기 때문이네요. 하지만 어렵게 말하자면 두 가지 요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縁を結いて」가 탄생한 배경같은 것. 이 곡이란 결과적으로 나라현의 텐가와 신사에서 탄생했어요.

 

 

─ 나라현은 쯔요시상이 도쿄에서의 생활이 괴로워지면 방문하는 원점과 같은 장소입니다만 "결과적으로" 라는 것은?
엄마와 누나와 함께 부모 효행을 포함해 여관에 묵으면서 나라에 갔었어요. 이 흐름으로 갔던 텐가와 신사에는 벤자이텐(弁財天)이 모셔져 있습니다만 엄마는 본 적이 없다고. 신사 분이 "모처럼이니 보러 가주세요"라고 말씀해주셔서 참배했습니다만 벤자이텐을 바라본 채로 엄마가 계속 말이 없다 싶었더니 주룩 하고 한 줄기 눈물을 흘리셔서. 저는 "왜 그래?" 라고 물었습니다만 "아름답네"라고 말하며 눈물을 계속 흘리셔서. 그 때, 지금의 내가 크리에이트 하고 싶은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매우 느꼈습니다. 엄마는 아름다운 것과 접해 눈물을 흘리는 것일 뿐인데 "왜 그래?"라고 묻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이론이 아닌 내츄럴한 것. 그런 것을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가사를 엮었습니다. 그러니 곡을 만들고자 텐가와 신사에 갔던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縁を結いて」가 시작된 듯한 감각이어서.

 

※ 벤자이텐(弁財天)

인도출신으로 예능·학예·지혜의 신이며 홍일점인 백색 미인의 신이다. 비파[비와(琵琶)]를 안고 있는 모습에서 음악·기예의 신으로서 받들어지고 있다. 또한 학문의 신, 지혜의 신이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이 경우는 재산의 「弁財天」이 아니고 재능의 「弁才天」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 그렇군요. 그러면 그런 배경이 있으면서 보컬 부분을 재녹음한  또 하나의 요소란?
제로(Zero)의 크리에이션이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창작을 할 때는 항상 텅 비어있어요. 아무 것도 들여놓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만드는. 다른 사람의 작품도 거의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도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하는 무(無)의 상태. 「縁を結いて」는 딱 바로 그런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만, 거기서부터 다음 단계 진행을 하려하자 플러스 1, 마이너스 1의 요소가 나오는. "시간이 없다" "전례가 없다"라고 하는 뭐 어른의 사정이나 상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ㅎㅎ 그리고 엄마의 눈물과 만나기 전이라고 하는 것은, 딱 마침 자신의 상냥함을 버리려고 생각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해서

 

 

─ 상냥함을 버린다... 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때까지의 저는 상냥함을 다 버리지 못했던. 제로의 크리에이션과는 관계 없는 사정이나 형편에 "뭐, 어쩔 수 없네"라고 자신을 맞춰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탄생되어오는 악곡과는 일절 관계없고,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더욱 관계가 없는 것이잖아요? 확실히 1년 전에는 레코딩이 끝나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나 형편이라고 하는 플러스 1, 마이너스 1의 요소가 얽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릴리즈는 연기하죠"라고 제 쪽에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보컬을 다시 들어보니 역시 플러스 1, 마이너스 1에 끌려다니고 있었던. 제로가 아닌었던 것. 그래서 다시 녹음하는 것으로 하고 문득 떠오른 것이 텐가와 신사에서 부르면 어떻게 될까나? 라고 하는 가슴의 큰 두근거림이 있었습니다.

 


─ 제로의 크리에이션이란 조금 막연한 것 처럼 생각됩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라는 것인가요?
그렇네요. 제로의 크리에이션에 고집해 릴리즈를 연기했기 때문에 텐가와 신사에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평소엔 신관님께서 축사를 올리는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에. 기적적으로 조건도 부합되어 전혀 레코딩적으로는 문제 없이 부를 수 있었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제 노래가 안되었네요. 스튜디오에서 이전에 녹음한 것과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던. 잘 부르고 싶다 라든가 이렇게 노래하면 전해지지 않을까나 라든가 하는 욕심이 나와버렸다고 할까. 그 때 최종적으로 깨달은 것이 노래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전 악기를 연주하고 있을 때도 이런 감각이란 있었지...하고

 

 

─ 어떤 의미인지요?
예를 들어, 건반을 치고있다고 해도 독학이기 때문에 여기를 치면 이 음이 나온다는 것 밖에 몰라요. 처음은 정확하게 치는 것으로 머리가 향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에게 전해지는 연주는 아니야 라고.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춤추고 있는 것을 조감으로 보고 있는 듯한 감각. 거기에 가까운 이미지로 노래했더니 스스로도 놀랄만큼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OK 테이크를 녹음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손을 합장하고 텐가와 신사를 뒤로 했습니다.

 

 

─ 그렇군요. 다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란 "가사가 내려온다"라든가 "신사의 부름을 받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스피리츄얼 적이라고 할까 상당히 전해지기 힘든 종류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요.

 

 

─ 그래서, 쯔요시상은 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굳이 말하시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만

이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잡지 인터뷰는 문자수의 제한이 있다는 것도 포함해서 알고 있는ㅎㅎ 하지만 말이죠 자아 그럼, 문자수의 한계도 있고 "오늘은 이쯤으로 살짝 말해두자"라며 말한다면 그건 제 형편을 생각한 것 밖에 되지 않는. 그렇다는 것은 플러스 1, 마이너스 1의 요소가 들어오지 않을 수 없죠. 제로는 평생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제로의 크리에이션을 목표하고 있다고 잔뜩 말하던 제가 그걸 해버렸다간 전혀 설득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縁を結いて」는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에 대한 러브송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국가라고 하는 큰 테마를 노래하면 엉뚱하게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완전 알고있습니다. "저 녀석은 정치가가 되고 싶은 건가?"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하지만 아티스트라고 하는 인생을 순수하게 사랑한다면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세지에는 솔직하게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저는 완전 밑바닥의 슬픔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취약이나 진통제가 아니라 치료약을 만들고 있는 듯한 감각이 있는. 음악의 세계에서의 마취약이나 진통제는 달콤한 사랑의 노래, 달콤한 코드 진행이라고 하는 일종의 방정식에 따르면 만들 수 있는 것. 하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을, 아니면 진심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들려주는 것을 저는 만들고 싶습니다.

 


─ 그러면 쯔요시상이 지금의 일본에 느끼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요?
떠올리는(思い出す)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라는 메세지는 매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의 프로인 정치가는 신당을 세우거나 하여 어른의 괴롭힘을 저희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있지요. 거기에 대한 불평불만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일본인이 아름다운 일본을 떠올려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반대로 말하자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고, 떠올리는 것에 성공하면 아름다운 일본을 되돌리는 것은 가능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 그 사고방식은 안티 테크놀로지도 포함해서인가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왜냐면 저 자신 「縁を結いて」의 가사를 컴퓨터라고 하는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서 쓰고 있는 것이고ㅎㅎ 저는 로우테크와 하이테크의 공존이 절대로 기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로우테크에 치우쳐도 지루하고, 하이테크에 치우쳐도 쓸쓸하니까.

 

 

─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지마(西表島)에 여행을 갔네요. 그 땅의 친구 가족이 반 자급자족 생황이어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에서 멧돼지를 잡는다고 하는.
완전히 로우테크네요ㅎ

 

 

─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는 몸으로서는 시간의 흐르는 방식이나 바다의 아름다움에 "좋네"라고 생각하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5살인 (친구의) 장남이 고등학생이 되면 도쿄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즉, 어느 쪽인가가 일방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도 있는 일본이란 멋진 나라구나 하고.
완전히 저도 동감이네요. 예를 들어 이 번 「縁を結いて」의 프로모션으로 가사를 딱 1장의 종이에 인쇄해서 어딘가의 높은 빌딩에서 흩뿌릴 수 없을까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종이에는 가사와 저의 이름이 써있을 뿐으로, 길가던 사람이 "뭐야 이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주었을 때 무엇을 느껴줄까나 하고. 그 건 종이를 흩뿌린다고 하는 로우테크한 방법이기 때문이야말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하이테크인 전자 미디어에는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요. 실제로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면 가사와 저의 이름만 쓰여진 컨텐츠를 업로드 해서... 그건 종이를 흩뿌리는 것으로는 불가능한 스피드감과 무경계(borderless)감이 있는. 어느 쪽이든, 저는 말의 힘, 언령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만

 

 

─ 그러면 음악의 힘이라면 어떨까요. 소설에도 영화에도 없는 음악만이 가진 마법. 도모토 쯔요시는 음악에 어떤 힘이 있다고 느끼고 계십니까?
음악의 힘은.... 사람을 구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도 그 힘은 있겠습니다만 음악만의 굉장함이란 심장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인간의 사령탑을 음악은 자극을 주어 움직이게 하지요. BPM을 떨어뜨리면 고동이 조용해지거나, 반대로 높아진다든가, 어쨌든 음에 의해서 심장은 반응을 해요. 음악은 인간의 사령탑을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그 앞에 있는 구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저 자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신을 음악이 구해주었던 경험이 있어요. 응. 음악은 사람을 구하는 힘이 절대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우연입니다만 「縁を結いて」의 커플링 곡인 「赤いSinger」를 헤드폰으로 들어주시면 제 심장 소리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 「赤いSinger」는 심장이 "살아있어"라고 노래해주고 있다고 하는 한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저 곡에서는 현장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로 「赤いSinger」를 듣고 반응하는 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녹음해서 넣었습니다. 그 순간은, 그거야말로 제로의 크리에이션이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이었습니다만, 지금 말하면서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곡을 들어준 사람에게 "나는 지금, 살아있어" "나는 지금, 살아있어"라고 하는 것을 떠올려줬으면 했다고 하는 것. 그래서 이런 제로의 크리에이션한 인터뷰는 정말로 감사하게도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것을 재확인 할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네요. 아름다운 일본뿐만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대화에서도 뭔가를 떠올린다고 한느 것이 역시 소중하구나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 일상의 생활에서 사소할진 모르겠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린다고 하는. 확실히 중요한 행위입니다만 바쁨에 쫓겨 잊어버리기 쉽상이기도 하다는 느낌입니다.
직감력이 아니니까요

 

 

─ 직감력, 말씀이십니까?
예를 들어, 사랑을 할 때란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지요? 사랑이 아니어도 회사의 윗 사람을 앞에 한 것만으로도 심장은 솔직하게 두근두근하거나 하는. 그러나 어른이면일수록 주위 사람에게 자신의 두근두근을 들키지 않도록 하여 평정을 가장하기 쉽네요. 솔직하게 있을 수 없는 것. 하지만 심장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그건 거짓말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현실에 두근두근하고 있는거니까. 이건 제가 말하는 제로의 크리에이션이라고 한다면 플러스 1이나 마이너스 1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자아, 어째서 많은 사람이 플러스 1, 마이너스 1의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심장의 두근거림을 무시하는가 라고 한다면 사정과 형편이 있기 때문일뿐으로. 사정과 형편조차 없다면 가슴의 큰 두근거림을 믿고 싶을게 분명할 것이고 그 시점에서 진정한 대답이 이미 나와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정이나 형편이라고 하는 이론으로 생각해버리니까 직감력을 믿지 않게 되고 살기 괴롭게 되버버리는 거시죠.

 

 

─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살기 괴로운 사람 쪽이 태반이라고도 생각해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떠올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 하고. 러브송이란 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헤이죠큐에서의 생활에는 신분의 고저가 있었기 떄문에 서로 사랑할 수 없는 남녀가 있었던. 그래서 만엽집 등에서 사랑을 읊었다고 하는 설입니다만 당시의 일을 떠올려보면 환경이나 상황은 전혀 다르지요. 하지만 유일하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을 하면 가슴이 크게 두근거린다는 사실. 자아, 무엇이 변했는가라고 한다면 저희들의 마음의 상태뿐이지 않습니까. (심장의 부근을 두드리며) 이 아이는 일절 변하지 않지요. 우리들만이 룰이나 시스템에 지배되어 변해버리고 만다고 하는 것. 결혼을 한다. 종이가 있다. 도장을 찍는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란 본질적으로는 종이도 도장도 딱히 필요없는 것이네요. 저는 지금의 일본인이 시스템이나 룰에 현혹될 뿐이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네요.

 

 

─ 확실히 "무엇무엇이 하고싶다"가 아닌 "무엇무엇을 하지 않으면"이라고 하는 무드가 현대사회에는 만연해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불안이나 망설임과 부딪히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총리대신이 바뀌는 불안정한 나라에서 저희들은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명확한, 누구나가 아는 하나의 밝은 미래란 느낄 수가 없죠. 하지만 한 가지만 명확한 것은 심장의 비트가 크게 울린다고 하는 절대적인 사실. 사람 각자가 스피드도 수명도 다르지만 두근두근 하면 가슴이 크게 뛴다고 하는 것만은 심장이 알려주는. 그걸 한 명 한 명이 떠올리면 「縁を結いて」에서 제가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일본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 자신 「縁を結いて」를 만들면서 엄청나게 가슴이 뛰었으니까. 그러니까 향후도 제 자신이 진심으로 "즐거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도록 음악과 마주해가고 싶네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태어나온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취재로부터 2일 후 동북 지방 태평양 지진이 이 나라를 직격했다. 미증유의 대참사. 잃어버린 터무니 없는 수의 귀중한 생명. 아직도 피해지에서는 혹독한 생활을 강요받고 있는 사람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때,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많은 일본인이 계속하여 생각하고 있다.

 

음악은 사람을 구원하는가?


그 대답을 도출해내는 데는 피해지에서 생활하지 않는 사람은 적임이 아니다. 하지만 9.11 테러 때 자유의 나라일 터인 미국조차 "Imagine"이 방송 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상상해봐"라고 노래했던 존 레논과 "떠올린다(思い出す)고 하는 것"의 메세지를 이끌어낸 도모토 쯔요시. 그 생각은 공통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16세기를 살았던 소설가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음악이 있는 곳에 진짜 악은 존재할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이 음악으로 가슴이 크게 뛰는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도모토 쯔요시와 야쿠시지

모든 루트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

 

도모토 쯔요시가 나라현 야쿠시지에서 라이브를 개최한 것은 2009년 7월의 일이었다. Funk나 Soul이라고 하는 루트 뮤직을 자신의 루트인 고향에서 게다가 세계유산인 야쿠시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美 我 空」라고 하는 <일본 회귀>가 된 앨범을 릴리즈한 타이밍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당연한 흐름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어서 2010년에도 7월 10일 & 11일 같은 장소에서의 라이브를 개최했다.

 

「팬들의 무엇이 대단한가 라고 한다면, 결코 현재는 메이저한 존재라고는 말할 수 없는 Funk 뮤직이라고 말을 했음에도 대인원이 보여주었다고 하는 사실이네요. 야쿠시지의 라이브뿐만이 아니라 4월 10일 제 생일을 나라현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어주어서. 정말로 감사하고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자신이 창작하는 것에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도모토 쯔요시와 텐가와 신사

모든 아욕에서 분리되는 신성한 장소


「縁を結いて」의 보컬 재녹음 뿐만 아니라 텐가와 신사에서는 PV 촬영도 실시했다. 쿠우카이(空海, 헤이안 시대 초기 승려)가 수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 텐가와 신사에서 촬영된 PV에서 도모토 쯔요시가 분하는 것은 무녀.

 

「신사 등의 오래된 창조물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옛날의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 설립의 일단. 그래서 그런 역사가 있고 나서 지금의 일본이 있고 정치가가 있다는 것 같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축을 표현하고 싶다고 감독께 전달했습니다. 장소는 텐가와 신사로 정해졌습니다만 저의 비쥬얼을 어떻게 할까 하고. 그 때 잡담 중에 "전부터 생각했는데 쯔요시상은 무녀와 닮았네요. 평소 텅 빈 느낌이 있고" 라고 감독이 말을 해서. 저로서도 구체적인 아욕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불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 무녀라고 하는 존재에 흥미가 계속 있어서. 그 싱크로에서 무녀로 PV라고 하는 이미지가 단번에 펼쳐졌습니다」

 

필청의 「縁を結いて」는 PV도 또한 필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