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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一 51/雜情報

[도모토 코이치] 6/26 우치 히로키 닛폰방송「マイ プレイリスト Love for Japan ~kizashi~」코이치 언급

by 자오딩 2016. 6. 27.

 

睦月 ‏@Light_prince_51   오전 1:14 - 2016년 6월 27일
【マイ プレイリスト 6曲目 】
続いてお送りする曲はですね。堂本光一君のSHOCK Original Sound Trackから「戦車」

이어 보내드릴 곡은 말이죠. 도모토 코이치 SHOCK Original Sound Track에서 "전차"

♪~戦車~
~전차~

 

お送りしたのはSHOCK Original Sound Trackから「戦車」でした。

보낸 것은 SHOCK Original Sound Track에서 "전차"였습니다.

 

このねBGM聞いただけで身体がゾワッとするんですけれども。本来これは舞台SHOCKの舞台の中ではジャパネスクと言われるシーンでとても激しい殺陣のシーンなんですけれども。これもGuys & Dollsと同じで23歳の頃にですね、

BGM 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조왓~ 합니다만. 본래 이건 무대 SHOCK 무대 에서는 "재패네스크"라고 하는 장면에서 매우 격렬한 난투 씬입니다만, 이것도 Guys & Dolls와 마찬가지로 23살 때네요.

 

SHOCK、光一君のライバル役を初めて選ばれまして、殺陣というものをやった事がない僕がいきなりSHOCKの中で殺陣をやるというのは始めは本当は不可能だと言われてたんですけれどもジャニーさんのすすめというのもありまして、あと光一君も殆ど面識なかったんですけども丁寧に教えていただいて初めて挑戦したものといいますか、それが僕の中で凄く印象深いと言いますか、それで今のこの戦車というBGMを流させてもらったんですけれども。

SHOCK, 코이치 라이벌 역할을 처음으로 뽑혀, 난투 장면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는 제가 갑자기 SHOCK 속에서 난투 장면을 한다는 은, 처음에는 사실은 불가능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쟈니상의 추천이라는 것도 있어서, 그리고 코이치도 뭔가 거의 안면은 없었지만 정중하게 알려주셔서 처음 뭔가 도전한 것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제 안에서 굉장히 인상 깊다고 할까요 그래서 지금 이 전차라고 하는 BGM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만


それからですね、ずっと今はその大阪公演、博多公演といって地方の方で今は主に光一君とはご一緒してるんですけれども。それからと言うものの頻繁に光一君からも今も連絡2人で取り合うみたいな。光一君も「いついつ俺オフなんだけど、いついつ内どう?」「あいてますよ」と言うとどっちかが車を出してドライブに行ったりだとか、ご飯食べに行ったりだとか。

뭐 그 후로부터 말이죠, 계속 지금은 그 오사카 공연, 하카타 공연이라는 지방 쪽에서 지금은 주로 코이치군과는 함께 하고 있습니다만, 그 후로부터 라고 해도 빈번히 코이치군으로부터도 지금도 연락 둘이서 주고 받는 것 같은. 코이치 "언제 언제 나 오프인데, 언제 언제 우치 어때~?" "아, 비어 있어요~" 라고하면 누군가가 차 가지고 나와서 드라이브 가거나, 밥 먹으러 가거나.

この間も本当に昼間から光一君のお家にお邪魔して一緒にゲームやったりだとか、ジュース飲みながらお菓子食べながらみたいな。「やってる事ほんと高校生だよな俺達」みたいな事光一君言うんですけど、ほんとそうですよ。凄くそういう関係性になれたのが僕にとって凄く嬉しいなって思いますし、そういう中で仕事の話になった時に凄い光一君が僕にアドバイスくれるので光一君には僕は兄貴って呼んでるんですけれども、兄貴、兄貴って、ね、呼んでるんですけども。

얼마 전도 정말 낮부터 코이치군 집에 방문해서 함께 게임을 하거나, 쥬스 마시면서 과자 먹으면서 같은. "하는 짓 정말 고등학생이네 우리들" 같은 말 코이치군 합니다만, 정말로 그래요. 엄청 그런 관계성이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있어서 매우 기쁘네 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뭔가 일 이야기가 되었을 떄에 굉장히 코이치군이 제게 어드바이스를 주기 때문에 코이치군에게는 저는 "아니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아니키~ 아니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仕事に対する姿勢も光一君は凄いストイックですから。例えばそのジャパネスクのシーンだったら凄くハードなんですね。我々が公演が終わった後に光一君の部屋とかで殺陣のシーンをよく2人で見返すんですね。何故かしんどそうに見えないんですよね。これ、不思議なもので想像を絶するぐらいしんどいんですよ。意識朦朧とするといいますか。稽古場からジャパネスクのシーンになるとそのおもりを4つあって両足の足首におもりを着けて、もう2つのおもりを両手に着けるんですよ。手首に。

에 대한 자세 코이치군은 매우 스토익하니까요. 예를 들면 그 재패니스크 씬이라면 엄청 하드하네요. 저희들이 공연이 끝난 후에 코이치군의 방같은 데서 살진 씬을 자주 둘이서 되돌아보거든요. 왜인지 힘들어 보이지 않는 거네요 이거. 신기하게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다구요. 의식 몽롱이라고 할까요. 케이고장에서 재패네스크 씬이 되면 그 추를 4개가 있어서 양발 발목에 추를 달고, 나머지 두 개 추를 양손에 다는거에요 손목에.


で、そのおもりめちゃめちゃ重いんですね。ジャパネスクを約15分間あるんですけど、それを頭から通してやるっていう。実際俺もそれ光一君のその後にお前も着けてやってみろって言われたんですけど、やったんですけどやり切りましたよ。やり切りましたけど、ほんと倒れましたね。そういう光一君の背中を見ているとだから何か輝いているだろうなぁって思うし、歳も取らないんだろうなって本当に思います。

그래서 그 매우 무거워요. 재패네스크를 약 15분입니다만,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다고 하는. 실제 저도 그거 코이치군의 그 뒤에서 "너도 달고 해봐" 라고 들었습니다만, 해봤지만 다 해냈어요. 해냈지만, 정말 쓰러졌네요. 그런 코이치군의 등을 보고 있으면 그래서 뭔가 빛나고 있는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나이도 먹지 않는거구나 라고 정말로 생각합니다.

でも何かプライベートでは何か可愛い一面もあったり、全然寝坊もしますし、僕が迎えに行ってるのに、全然電話出んくて、絶対寝てると思って、ピンポン、ピンポン、ピンポンってやってようやく起きて「ごめん今起きた」という何かお茶目な部分もあるので、仕事とプライベートのギャップとか凄く僕が大好きな先輩光一君です。兄貴です。はい
하지만 뭔가 프라이베이트에서는 뭔가 귀여운 일면도 있거나 완전 잠꼬대도 하고, 제가 데리러 갔는데 전혀 전화도 안받아서.. 절대 자고 있겠지 싶어서 띵동 띵동 띵동 하고 있으면 겨우 일어나서 "고멘 지금 일어났어" 라고 하는 뭔가 장난스러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일과 프라이베이트의 갭이라든지 것이 엄청 제가 다이스키한 선배 코이치군입니다. 아니키 입니다. 하이

 

 

 

 

 

 

 

 

우치... 서른 앞두고 되돌아보는 20대 인생 ㄷㄷㄷ

정말 님도 참 어린 나이에 이래저래 굴곡졌긔.......

 

코이치 얘기도 있긴 하지만 것보다 한 번 다 들어보는 것도 추천....

케시고무 같던 우치가 정말 이렇게나 올바르게 잘 컸구나.....싶어짐... 아직 갈 길이 한창이고 이제가 더 중요하겠지만 ㅇㅇㅇㅇ

 

거기엔 무엇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치 손을 놓지 않고 잡아 주었던 쟈니상 몫이 가장 큰 것 같고.... 

역시나 다양한 경험,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람은 성장을 해가는 것인가 보옴...  

 

내가 항상 생각하는 건, "연륜" 즉 "시간" 이라는 건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내가 미래를 상상하고 머리 큰 척을 한들, 그 시기, 그 시간을 다 지나봐야만 비로소 알게되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음....

 

 

 

 

첫 곡으로 선정한 NEWS의 체리쉬는 우치가 뉴스 멤버로 활동 하던 시기의 마지막 곡. 뉴스 & 칸쟈니 멤버에게는 너무 폐를 끼쳤고 본인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지만 팬분들께 본인 입으로 발신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당시 20살도 안되었던 자신은 처음에 분명 오사카에서 칸쟈니로 결성이 되었는데 갑자기 도쿄로 불려와서 뉴스라는 팀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고 뭔가 마음이 구챠구챠하고 갈등이 있던 시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미성년 음주), 그로 인해 근신 중, 그동안 그렇게 바쁘다가 갑자기 생긴 시간에 방황. 마음이 뻥 뚫린 느낌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해준 것이 부모님. 그래서 기타를 처음으로 손에 잡고, 입문서를 보면서 미스치루 노래 들으면서 저거 칠 수 있음 좋겠다... 라며 매일 같이 만지고 그래서 칠 수있게 되고...

 

그런데 그런 가운데 많은 반성과 함께, 물론 본인은 반성을 했지만 이 마음이 세간에는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근신 기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고, 그래 사무소에서 나가자, 이 세계에서 발을 씻자며 쟈니상에게 전화를 해서 사무소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고, 너는 진보할 힘이 없는거냐고 기다리라고. 자신이 예상하기로는 쟈니상도 본인 입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붙잡아 주었다고.

 

니시키오리상과 우에쿠사상과는 따로 밥도 먹고 프라이베잇으로도 만나는데 두 분 웃으시며 대화하는 모습 보고 있으면 이런 장면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나는 이게 왠 사치인가 싶다고. 집 이사했을 때 마침 우에쿠사상도 이사 준비를 하고 있어서 완전 큰 관용 식물을 처리하실 겸, 급 새벽 1시 반에 우치 보고 자기 집에 오라고 불러서 갔더니 (집 가까움) 그 식물이 뙇하고 놓여져 있었는데 순간 바로 '아 이거 필요 없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선배이기 때문에 그 말 절대 못하고 야밤에 둘이서 낑낑 거리며 20분 정도 자기 집으로 옮겼다고. 우에쿠사상은 화분 하나 처리 한 것에 홀가분해 하셨고, 그 식물은 역시나 지금 아주 보기 좋게........... 말라버렸다고 ㅋㅋ 지금은 모자 걸거나 열쇠를 걸거나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함.

 

지진 일어났을 때, 아직도 그 트라우마가 있는데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를거라고. 그 때 집이 흔들렸는데 집에서 여동생이 아직 자고 있었는데 선반이 넘어지는 찰나 동생 구해야겠다고 뛰어들어 동생 위로 몸을 던지고, 선반이 본인 등을 깔고뭉개며 넘어졌는데 상당히 무거운 선반을 아버지가 부왓 하고 달려와서 한 손으로 초인적인 힘으로 구석탱이로 날려버렸다고. 지금도 아버지 지금도 애기하면 그 때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라고 한다고. 자식 구하기 위해 나온 힘일거라고.

 

크레바상하고 처음 랩이라는 것을 도전하게 되었는데. 아니 29살이나 먹어서 이런 새로운 도전을 해야하는 건가...?! 싶었지만, 물론 전문 래퍼들 발끝도 못미치지만 그래도 공연을 피로할 수 있을 만큼은 늘게 되었고 정말 이 나이에도 하면 되는구나! 하면 안되는구나! 라는 걸 배웠고 아직도 도전하고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도 느꼈다고. 정말 요즘 애들 너무 쉽게 쉽게 금방 그만두고 포기하는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고. 도전을 계속하다보면 분명 그 앞에 반드시 형태로 나타나는 날이 온다고.

 

 

 


 

 

http://mdpr.jp/news/detail/1594324

 

2016-06-27 11:44 参照回数 149,237

 

内博貴、NEWS&関ジャニ∞への思いを初告白「葛藤があった」

우치 히로키 NEWS & 칸쟈니8에 대한 마음을 첫 고백 "갈등이 있었다"

 

 

【内博貴/モデルプレス=6月27日】俳優の内博貴が、26日放送のラジオ「マイ プレイリスト Love for Japan~kizashi~」(ニッポン放送/毎週23:30~)にパーソナリティとして出演。「Good Musicでニッポンを元気に」という番組テーマのもと、内はかつて所属していたグループ、NEWSの「チェリッシュ」を1曲目に選曲し、当時感じていた自身の思いを初告白した。

배우 우치 히로키 26일 방송 라디오"마이 플레이 리스트 Love for Japan~kizashi~"(닛폰 방송/매주 23:30~) 퍼스널리티로서 출연. "Good Music으로 일본을 건강하게"라는 프로그램 주제로 우치는 과거 소속됐던 그룹, NEWS "체리쉬"를 1곡째로 선곡하면서 당시 느꼈던 자신의 생각을 처음 고백했다. 

 

 


■ 「本当にすみませんでした」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今年の9月で30歳を迎える内は、自身の20代について「今振り返ると、本当にいろいろなことがありました」といい、“20代を振り返る1曲目”として「僕の中で思い出深い最後の曲」という2005年リリースの「チェリッシュ」を選曲(正式には「TEPPEN」まで参加)。

올해 9월에 30세인 우리는 자신의 20대에 대해서 "지금 보면 정말 여러가지 있었습니다"라며 "20대를 돌아보며 첫번째 곡"으로서 "내 속에서 추억이 깊은 마지막 곡"이라는 2005년 발매 "체리쉬" 선곡 (정식으로는 "TEPPEN"까지 참여).

 「正確にはまだ僕がハタチになる前、19歳くらいなんですけど、まずNEWSというグループでデビューさせていただきまして、その後に関ジャニ∞でデビューさせていただいたんですけど、ハッキリ言ってこういう話を僕自身の口から発信するのは初めて」としながら、「あの頃のメンバーには、本当に深く反省していますし本当にごめんなさい、という気持ちは伝えられたんですけども、今こうやって聴いてくださっているファンの皆様は僕のこういう言葉を聞いたことがなかったと思いますので、本当にすみませんでしたという気持ちを込めて、この曲を選ばせていただきました」と選曲の理由について明かした。

"정확히는 아직 내가 스무살이 되기 전 19살 정도인데, 우선 NEWS라는 그룹으로 데뷔해서, 그 후에 칸쟈니에서 데뷔하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말을 나 자신의 입에서 발신하는 것은 처음" 이라며 "그때의 멤버에게는 정말 깊이 반성하고 있고 정말 미안하다고 마음을 전했지만 지금 이렇게 들어주시고 계시는 여러분은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죄송했다는 마음을 담아서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라고 선곡 이유를 밝혔다.


■ 関ジャニ∞とNEWSの掛け持ちに“葛藤”

칸쟈니 NEWS 겸직 "갈등"


また、「当時の僕というものは、大阪から東京に出て来ていろいろな葛藤があったんです」と振り返り、「もともとは関ジャニ∞でグループを結成したのに、急に東京に呼ばれて、NEWSというグループに(決まったことを)社長に言われて、『何なんだよ』って自分の気持ちがぐちゃぐちゃになった時代だった」と明かす一幕もあった。

"당시 나는 오사카에서 도쿄로 나와서 여러가지 갈등이 있었어요"라고 되돌아 본다, "원래 칸쟈니∞으로 그룹을 결성했는데 갑자기 도쿄 불려와서 NEWS라는 그룹으로 (정해졌다는 것 사장에게 말을 듣고, 『뭐지?』라며 자기 마음이 엉망이었던 시대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内は2002年12月に関ジャニ∞のメンバーに選ばれたが、2003年11月にNEWSとしてデビュー。2004年8月には関ジャニ∞としてデビューも果たした。しかし2005年7月、未成年の飲酒により補導され芸能活動を中断。無期限の活動自粛とされていたが、2006年末に研修生として事務所に復帰。一方でNEWS、関ジャニ∞の両グループからは事実上の脱退扱いとなった。現在は舞台を中心に俳優として活動している。(modelpress編集部)

우치는 2002년 12월 칸쟈니의 멤버로 뽑혔지만 2003년 11월 NEWS로 데뷔. 2004년 8월에는 칸쟈니∞으로서 데뷔도 했다. 그러나 2005년 7월, 미성년의 음주로 보도되어 연예 활동을 중단. 무기한 활동 자숙으로 알려졌으나, 2006년 말 연수생으로 사무실에 복귀. 반면 NEWS, 칸쟈니 그룹에서 사실상 탈퇴로 취급되었다. 현재는 무대를 중심으로 배우로서 활동하고 있다. (modelpress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