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도모토 쯔요시의 행방
어디까지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같은 푸른 하늘이, 뚫려 있는 것 처럼 펼쳐져 있다.
Under the Sky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 ─ 이라는
뻔하지만 폼나는 프레이즈를 읊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도모토 쯔요시가 생각하는 「자유와 해방」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그 정신세계와 마주하는 사이에, 그의 혼<소울>에 닿을 수 있었다
일찍이, 조 스트러머(Joe Strummer: 영국의 록 뮤지션. 1970년대 후반 영국 록 그룹 클래시(The Clash)의 멤버로 Punk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이렇게 말헀다. 「PUNK란 Attitude (마음가짐, 또는 자세)다」 라고 Funk도 그러하다. 스타일도 개념도 아닌, 살아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을 꾸미는 것만으로는 가슴에 울림이 없다. 그 진리를 아는 그가 울리는 소리와 자아내는 말에는 듣는 자를 춤추게 하는 혼이 깃들어 있다.
─ 지극히 개인적인 흥미의 질문이라 송구스럽습니다만, 쯔요시상은 프린스의 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운명에 있으니까요. 안타깝고 슬프기는 합니다만, 그것에 대해서 제가 뭔가 말하는 것도... 물론 좀 더 Funk를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만 이것만큼은 섭리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제 주변의 뮤지션은 역시 침울해 했습니다. 아마 몇 백 살까지 살았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라고 생각하니까 ─ 조금 인생을 마치기에는 너무 빠른 느낌도 들지만요...
─ 그 프린스의 음악의 핵심으로도 되었던 Funk에 대해서 새삼 다시 쯔요시상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 번 릴리즈되는 미니앨범 「Grateful Rebirth」를 들으면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본의 음악 씬에 있어서 올곧게 Funk를 하고 있는 유수의 아티스트라고 하는 것이 더욱 명확하게 된 느낌이 들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면, Funk가 이미 세일즈에 결부된 음악인가 한다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솔직한 점에서. 잘 팔리는 이치에는 부합하지 않으니까요. Funk란 직역하면 「흑인의 체취」라고 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뭐... 제 안에서는 관동 사람보다도 관서 사람 쪽이 Funk라든가 재즈라든가 블루스라든가 좋아하지 않을까나 하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서. 저도 팝스는 결코 싫어하지 않습니다만 자신의 DNA라고 하는 것이 자라난 토양에서 보자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아이돌같은 팝스보다도 민족적이고 인간다운 Funk 쪽이 기분이 좋습니다. 그 다음에 블루스도 좋아하고, 즉흥적인 재즈도 물론 R&B도 좋아하지만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울리는 데는 다름 아닌 음악으로서 Funk를 좋아하네요. 그것과, 팝스나 락이라면 무겁게 들리는 메세지도 Funk라면 어딘가 따뜻해지거나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 쉽다고 하는 것도 있어서. 리스너에게 생각하게 하는 방법론으로서 엄중한 가사를 늘어놓을 때도, 전혀 의미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가사를 늘어놓는 때가 있어서 후자쪽은 몰라줘도 좋으려나 라고 생각하거나도 합니다만... 뭐 기본적으로 제가 만들고 있는 악곡은 모르겠다면 무리하게 들어주지 않아줘도 괜찮아요. 하지만 왜일까요... 모두 꽤 여러 사람들의 정보를 근거로 해서 머릿속 안에서만 대답을 내려고 하지만 저는 머리 외측에서 받아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죠. 그것을 위해서는 팝스와 같은 음악보다도 Funk일까나 하고. 드럼과 베이스를 좋아하는데 그것이 가장 특징이 되어있는 장르라고 하는 점도 끌리네요. 게다가, 쟈니즈 사무소에 있다고 하는 환경에서, 어디까지 저는... 그렇습니다만 팝스라든가 록을 하는 의미를 그다지 발견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깊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Funk에 흘러들어갔다고 하는 것이 사실인 부분이지만요.
─ 사람이 음악을 듣고 춤춘다고 하는 때는 뇌가 명령을 내기 전에 혼=소울로 느끼고 몸이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나 라고 생각하네요. 그런 그루브감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가운데 아마 항상 부딪히는 벽으로서 일본어 가사를 어떻게 띄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체계적으로 그루브감을 내기 어려운 것도 있어서, 이것은 뭐 영원한 테마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본어에 고집한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일본인이라고 해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극단적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으려나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사실을 말하자면 칸사이벤으로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만, 그건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정도에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 하고 있어서. 칸사이벤 쪽이 영어스럽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사를 만드는 편이 편하지만, 그렇네요... 향후 몇년 걸쳐서 그 부분을 편하게 생각해서 만들도록 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미니앨범을 만들면서 더욱 뭐라고 할까... 다른 사람의 형편에 맞추는 것은 어렵네, 라고 생각해버린 점도 있어서. 『이런 곡을 원하고 있습니다』같은 것에 응해가는 것이 엔터테인먼트인지 어떨지 저는 옛날부터 조금 모르겠다고 하는 타입의 인간이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거나 탄생시키는 사람은 괴짜(変人)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정상이 아닌 편이 좋다고 조차 생각하고 있네요. 그것을 좋은 방식으로 비지니스로 변환할 수 있는 사람도 개중에는 있겠습니다만 딱히 비지니스로 이어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나 하는 인생도 있는 것으로. 그것은 하고 있는 본인이 정하는 것입니다만, 뭐랄까, 뭐 아까 말한 민족적이고 인간다운 음악이 울리고 있는 Funk를 좋아한다고 하는 이유도 결국은 뭔가 Fake적인 것이 귀찮다는 것과 『자신은 이런 인간입니다』라고 하는 것일 뿐인 이야기인 것이네요. 그래서 거절당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맘에 들어 해준다면 OK라고 하는... 어느 쪽이든 제 안에서 내는 답은 똑같기 때문에. 거절 당해도 찬동을 얻어도 그것은 바뀌지 않고, 그것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하거나 감정을 흔들리는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만 어떻다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머리속 안에 있는 지금까지의 경험 속에서 밖에 대답을 내지 못하는 사람, 상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저는 Funk를 하며 이런 가사를 쓰고 있는. 뭔가 깨달음 같은 것을 줄 수 있다면 좋겠네 라고 하는 조금 건방진 감각도 있으면서... 다만 절대적으로 깨달으라고도 생각하고는 있지 않네요. 뭐, 모두 질리지도 않게 다른 사람 이야기만 하고 있네 라고. 뭐가 즐거운 걸까나. 저는 그 즐거움이나 쾌락을 모르겠어서. 타인에 대해서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흥미가 없으니까. 인간답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흥미가 솟아오르지만 누군가에게 들은 『이렇게 해두는 것이 무난하다』라고 하는 일상을 그저 보내고 있다고 할 뿐인 사람이라든가 정말로 흥미가 없는. 말과 행동과 표정과 복장과 머리 모양을 구사해서 딱 정해놓고 『나는 이렇습니다, 나는 이렇습니다』라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 주제에 그렇게 해서 속이며 살고 있는 사람이 좋아지질 않네요. 뭐 그건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이기 때문에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절대로 좋아지지는 않네 라고. 정말로 순수무구하게 솔직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사람 쪽이 저는 함께 있으면서 즐겁고. 그래서 Funk를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장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Funk는 자신을 꾸미면 『조금 아닌데』라고 하는 위화감이 나와버리기 때문에, 웅. 즉,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없으면 Funk다운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진심으로 Funk를 하고 싶다면 우선 안에 있는 자신과 대결을 하고 해방을 하는 것이 필요한거에요. 실제인 부분에서, 저 자신도 계속 가사라든가 어레인지라든가 점점 심플하게 되어가고 있어서, 이번도 떼어낸 것이 많이 있어서. 다음에 또 만들 때도 아마 떼어낼 것이라고 라고 생각합니다만 음악 이외의 요소를 위해서 크리에이션을 삼가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솔직히 의문이네요. 그래도 음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니까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웅~... 제 입장에서 보면, 그 사고 방식은 "?(물음표)" 이지만 말이죠. 매우 "?" 이네요. 왜인가 하면 저는 작가가 아니니까.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라 작가로서의 악곡을 원해주는 일도 있고, 스위치를 바꾸면 어떤 가사나 멜로디도 쓴다고 하는 각오는 있지만 그 각오로 곡을 쓰는거라면 다른 명의로 하고 싶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도모토 쯔요시의 이야기는 아니네 같은 점이 있어서. 하고 있는 것은 저이지만 뭔가...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의 중요한 이야기로 말하자면, 전혀 내가 아니네 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것이 되는. 그것은 역시 자신이 아니라 Fake이니까. 그런 식으로 진정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많은 편이 절대적으로 즐겁지 않을까나 하고 생각해서 30세를 지난 근처 부터 갈등하고 있지만요. 벌써 37이 되었고, 『슬슬 이런 저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되지 않아?』 라고. 인상이라든가 이미지로 단정 지어지는 것 힘들고 귀찮아요 솔직히. 그런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정말로 아까운. 그거라면 가사를 쓴다든가 음악을 만든다든가 친구와 어딘가 외출하는 편이 완전 편하니까. 그런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극력리 인생 속에서 떼어 내고 음악에 집중하고 싶은. 프라이베이트에서 놀고 있을 때도 음악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인생, 최종적으로 마치는 것이 된다면 좋겠네, 그런 감각으로 계속 살고 싶네 라고 하는.
─ 비교적 일상 대화에서도 "그루브감" 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십니다만, 음악뿐만이 아니라 친구와 말하거나 놀고 있을 때도 문득인 순간에 태어나거나 하지 않습니까. 바꿔 말하자면 "흥(ノリ)"가 되려나요. 누구든 무의식에 그런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라고.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거나도 했습니다.
인간이라든가 동료, 가족이라고 하는 키워드 속에서 지금자신의 팀이라고 할까... 함께 음악을 만들고 있는 것이 거의 다 관서인입니다만, 의식해서 모은 것이 아니라 깨달아보니 관서인들뿐만이었다고 하는 느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관서인 특유의 『시랑가나~ 알게뭐야~』적인 타인에 대해서도 엄청 흥미가 있는게 아니라고 할까나, 문화적으로. 뭐라고 할까나, 관서의 부드러운 흥으로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뜻하게 되어 오는거에요. 그것을 민족적인 Funk라고 하는 것으로 구현시킨다고 할까. 저로 말하자면 나라인 특유의 그루브를 담아 Funk를 한다, 같은 것 말이죠. 다만, Funk를 하고 있다는 인식은 없습니다. 『그 음악의 장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Funk』라고 대답하지만, 고집해서 할 필요성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하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이 초이스 하는 음표나 그루브가 Funk에 가깝게 되어버리는. 음색이라든가 선택하는 기타라든가, 베이스 라인이라든가 포함해서 소울이나 Funk, 모타운 계의 것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그것들을 여러가지 구사해서 곡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려나요. 그러니까 뭐... 『본래라면 마스터링에서 여기의 kHz를 올리지만 굳이 올리지 말아주세요. 반대로 여기에서는 올려주세요.』라고 하는 오더를 세세하게 내고 있어서. 딱히 오래된 음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만, 현대의 음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저는. 현대의 음을 하면 인간다운 부분이 음역적으로 컷트 되어버리기 떄문에. 뭔가 너무 아름다워서 흥미가 솟지 않습니다. 음이란 여자와 닮아 있어서 너무 아름다우면 흥미가 옅어져 가는. 『아, 네, 아름답네』라고. 하지만 조금 뭔가 인간스러움이라든가 의외성이라든가 이상한 버릇이라든가 있으면 『어떻게 된거야 이사람』이라면서 흥미를 갖는 것과 비슷해서. 그런 인간미가 있는 여성과 같은 것을 음악에도 바라고 있어요. 너무 아름다운 여성과 데이트를 해서... 긴장하다 끝났을 뿐, 같은 음악은 듣고 싶지 않고 만들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저 사람과 있어서 즐거웠네』라든가 집에 들아가서 혼자서 『그 여자애, 귀여웠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네』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꾸밀 필요성도 없고, 솔직하게 순수무구하게 살면서 음악을 하고, 거기서 만난 인연 아래 모든 동료들과 음을 울리거나 하고 있으면 좋으려나 라고. 기본적으로는 음악 스타트 시점에서 성립되어있다면 저의 인생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음악은 계속해가겠습니다만, 진정한 자신을 음악에서 표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점점 마주하게 된다면 그 때는 한 번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제 안에서는 아슬아슬해서, 유통이 아니라 좀 더 작품을 만들어내는 측이 주장해야만 하는게 아닐까나 라고. 조금만 더 만드는 측의 인간의 이야기를 유저에게 전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라면 음악이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도, 이미 인간이 만들지 않아도 좋지 않겠는가 라고 하는 것에 최종적으로는 될지도 모르겠네라고. 다만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세상에 던지기 위한 음악을 한 번 그만두는 것일 뿐, 자신이 집에서 기타를 치거나 뭔가의 형태로 울리는 음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야 말로 자신을 표현 할 수 없게 된다고 하면 한 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반대로, 기타리스트의 손버릇인 주법까지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걸로 곡을 만든 시점에서 진짜 의미에서의 그루브란 태어나지 않는게 아닐까나라고 하는 느낌도 드네요.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대가 있고, 기타가 컷팅을 새기며, 건반이 소리를 겹쳐가는 가운데 그루브가 나온다고 할까, 연주자 동지들이 음을 통해서 서로 공명하는 것으로 태어나는 것이 그루브아닐까나 하고.
우선 상황이 있고, 거기서 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만, 음악이란 원래는 인간에게 바치는 것이 아닌거네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울리고 있던 것으로 상대가 신이거나 부처거나 또는 기우제를 할 때 뭔가 울리거나... 요컨대 제사가 근원이라고 할까. 그것이 언젠가부터 대중의 것이 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변해갔다고 하는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 사람이든 아니든 『고마워』라고 하는 감사의 마음을 담으면서 레코딩은 하고 있지만 말이죠. 뭐라고 할까나, 음을 울린다고 하는 것은 밥을 먹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구나』라고 하는 감사와 함께 울리는 것이 음악의 기본으로 있어서, 그것이 결과적으로 생활비가 되거나, 여러 사람들 구하는 것이 되고 있을 뿐인 것으로. 자신이 레코딩을 할 때의 진정한 의미라고 하는 것은 『좋은 곡을 녹음하고 싶다, 좋은 관계성의 사람들과 울리는 음을 녹음하고 싶다. 오늘도 나의 곡을 녹음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사람들이 모여주었구나, 고맙네』라고 생각하면서 녹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돌아간 후도 혼자서 스튜디오에 남아서 음을 다시 한 번 머리로 생각해서 정리정돈하고,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Fake스러운게 싫으니까 더욱 리얼한 것을 ─ 이라고, 앞뒤를 맞춰가면서 최종적으로 릴리즈 할 수 있는 형태로 완성한다고 하는 느낌입니다. 뭐,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여러 가지 말할 수 있습니다만, 간단히 말하자면, 즐거운 동료들과 감사의 마음 속에서 음이 울리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는. 기본적으로 Funk를 통해서 모인 사람은 모두 악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며 살고 있는 것이네요 그 이유는 같거나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함께 하고 있고, 해보고 안된다면 안되는 걸로 괜찮다는 서쪽 인간의 흥도 있어서. 뭔가 . 『실패하고 싶지 않아』같은 것이 귀찮네요. 그거라면 방에서 혼자 있으면 되지 않아? 라고 하는. 인간 동지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같은 건 얼마든지라도 있는 것으로, 그것을 실패로 이해할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받아들일지로 그 사람의 기량이라고 할까 인간의 크기가 보인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꽤 여러 사람과 음을 내고 있고,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이 사람은 장르로 말하자면 록 바탕의 사람이니까』같은건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우연히 인연이 있어 함께 하게 된 사람들과 계속 연주하고 있다고 하는 느낌이려나요.
─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 전에, 우선 손을 모아 함꼐 음을 울려보면 말이 필요 없기도 하지요.
응. 게다가 인간이기 때문에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고. 나에게도 있고. 그렇게 울려가는 가운데 서로 딱 좋은 부분이 멋있다면 『여기서 적용시키죠』라고 하는 식으로 해가면 좋을 뿐인 것입니다. 그런 감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무소의 후배에 대해서라든가 솔직히,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아요 ㅎㅎ 제가 이런 형태로 솔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젊은 탤런트상들의 표현의 폭도 넓어지겠네요 같은 말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런 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저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역시 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들은 것을 제멋대로 했던 적은 과거에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것을 말하면, 모두 대체로 『의외네요』라고 말합니다만, "쟈니즈답지 않아"고 표현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저의 활동에 OK를 내주고 있는 것은 회사이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누구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쟈니즈의 인간 모두가 역할 분담해서 한다는 것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좋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서로를 비교할 필요성도 없는.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정보만으로 경솔하게 논하는 것은 어떨까나 하고.
─ 애초에 지금에서는 이제 「쟈니즈답다, 쟈니즈답지 않다」라고 카테고리화 하는 것조차 넌센스이지 않을까나 하고 생각해서.
그런 느낌도 있네요. 하지만 세세하게 말하면 있어요. 쟈니즈 사무소에 소속되어있는 인간입장에서 보자면ㅎㅎ 뭐, 쟈니즈에 한하지 않고 『○○○답다, 답지 않다』라고 선을 긋는 것은 정말로 어찌되어도 상관없네 라는 느낌이 드네요. 어느새 남자답다 여자답다 라고 하는 정의도 상당히 바뀌어있는 시대이고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한 경치가 일장적인 것으로 평범히 있으니까요. 무엇을 화제로 할지 라고 하는 부분도 변해서 여기는 논하지 말고, 여기는 논할까 같은 것은 생각하거나 하는. 아마 말이죠,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논할 수 없는 것이겠죠. 논하는 위세만은 있지만 애초에 의견이 없는. 그렇기 때문에 『못이기겠어 싸울수 없어』같은 무드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아까의 프린스가 죽었을 때도 『록색이 강한 음악을 하고 있던 뮤지션 프린스』같은 문투를 쓰고 있던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람들 정말로 프린스에 대해서 하는 걸까나 라고 생각해버렸지만요. 이야, 말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록 측면에서밖에 프린스를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 표현이 되는 거네 라고. Funk를 조금이라도 알아봤다면 평범히 프린스를 통해서 Funk의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 팝이라고 하는 형용사라면 알겠지만요, 프린스라고 한다면.
맞아요 맞아요. 뭐,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아, 레니 크라비츠 (Lenny Kravitz)는 어느 쪽인거야? 같은 이야기로도 되지 않을까요. 그 음색과 타임감으로 말하자면 Funk라고 하는 느낌보다 록에 가까울까나 같은 해석이 되겠습니다만 하지만 본인이 『내 음악은 Funk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Funk인거네 라고 생각하네요. 하지만 본인은 아마 Funk를 한다고 하는 의식이 없어서... 프린스였다면 단순히 그의 음악을 울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주변이나 외야가 고민해서 그 중에서 "Funk"라고 하면 납득이 가니까 말하고 있을 뿐이어서. 하지만 프린스입장에서 보자면 "프린스의 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포함해서 뭔가 이런... 공부도 하지 않고 논하는 풍조가 계속 이어져서, 공부를 한다면 의견도 생겨날텐데 그저 논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나하고.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이나, 읽은 것 같은 프레이즈를 염치도 없이 이차 활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아무래도 부정할 수 없네요.
─ 말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복사 & 붙여넣기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그것이 가능한 시대이니까요. 누군가가 발한 말을 복사 & 붙여넣기 해서 다시 조합해버리면 기사의 형식이 갖추어지니까.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복사 & 붙여넣기 한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엮어낸 말을 많은 사람이 믿고 읽는다는 것. 그러니까 처음 부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만들어 내는 측의 인간이 의견을 내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만드는 인간이 고민하면서 제안하고 또는 의견을 내가지 않으면 무서운거야- 라고. 솔직히 최대공약수적으로 알기 쉽게 작품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어떨까나 하고 생각하네요. 이미 전시대적인 감각인데 아직도 방법론으로서 버젓히 통하거나 하는. 어떤 업계에서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횡일열로 맞추고 싶은거냐 라고. 이번의 앨범에는 『자유, 해방』이라고 하는 테마가 있습니다만, 제가 제창하고 있는 것은 그런 군중에서 떨어진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해방인거에요. 결코 밝은 의미가 아니라. 하지만 고독에야말로 색채가 있다고 하는 테마로 군중에서 떨어져서 자신에게 바치는 미래를 생각해며 걸어나간다, 그것을 위한 자유와 해방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말하자면 동료는 엇갈리기 쉬운. 예를 들면, 엄청 개성적인 잡지를 만든다고 해도 『공격적인 형태의 잡지네요』의 한 마디로 끝나버리고 마는. 그것에 대해서 공격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잡지와 똑같은 것을 하지 않을 뿐인데 라며 그 정도의 열기로 가면 좋을텐데, 역시 소외 되는 것이 싫으니까., 모두 비슷한 것을 하는 것이네요. 그것이 어느 업계에도 만연해 있기 때문에 좀 더 모두가 개개로... 그거야 말로 "공격하고 있네요"라고 타자에게 듣는 것을 해나아가면, 받아 들이는 측으로서는 재미있는 것이 되어서. 아마...이겠습니다만 앞질러 가서 혼자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반대로 바뀌지 않는 것이겠죠. 각업계에서 한 번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잡지라면 『이런 식으로 바꿔가지 않을래요』라고 모두 업계를 부흥시켜 가죠 라고 하는 이야기를 어째서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음악도 사실은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유저가 듣고 정말로 즐거운 것을 모두 제공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의 상황에서 그것을 하면 『조금 특이하네』라는 말을 듣고 끝나버리기 때문에. 뭔가 아깝네 라고. 다만 유저는 본래 그런걸 바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공부하는 것 즐거우니까요.
─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영합하고 있다고.
유저에게 맞추도록 하죠, 얼굴색을 살피며 비지니스를 하죠 라고 하는 것도 어떨까 싶으니까. 저는 거기에 영합하지 않고 할 생각이지만 말이죠. 향후도 그런 입장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종적으로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떻게 생각되어도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뭐, 자신에게는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음악을 만들고 자신이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는, 행복하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동료와 인생을 보내갈 수 있다면 하고. 정말, 그것뿐입니다.
─ 감사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본지 항례의 「신경 쓰이는 PERSRON」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만.
웅~ 신경쓰이는 사람... 뭐 항상 신경쓰고 있는 건 쟈니상이려나. 그 사람은 크리에이터라서 말이지. 예전 일입니다만 『내가 창조하는 것을 아무도 알아준 적이 없다』고 저에게 투덜거린 적이 있어서.
─ 쟈니상이 쯔요시상에게 말씀입니까?
네. 그 때 저는 일종의 동종이구나 라고 생각했네요. 크리에이터가 뱉어낼 법한 말이기 때문에. 『그거야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전부 이해하고 있는 사람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건 자랑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좋아』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것과 동시에 그가 말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면 쟈니상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네요. 그리고 제 Funk 라이브를 보러 와주셨을 때 『쯔요시 팬분들은 엄청 좋은 사람들이네』라고 얘기 해주셨던 적이 있어서. 『너는 정말 좋은 팬들에 축복 받았구나』라는 것과 『그녀들은 무언가를 "시켜서 하고 있는" 너를 보고 싶다고는 결코 생각하고 있지 않는거네. 그러니까 쯔요시가 주체가 되어서 너의 주도로 너의 룰로 무언가를 스테이지 위에서 하고 싶은가를 표명하는 것이 너의 스타일이 아니면 안되는거야』라고 말해주셨네요. 25~26세 였으려나? 그렇게 해서 솔로 워크에도 몰두해가는 가운데 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사고방식이 점점 펼쳐 가는 데 있어 주위와 온도차를 느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갈등이 있는 가운데 매번 생각하는 것이 쟈니상이 문득 나에게 투덜거렸던 말이네요. 애초에 혼자서 음악을 하세요- 라고 말해준 것도 쟈니상이고. 제가 하고 싶다고 주장해서 솔로를 시작한게 아닌에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곡을 만들어 받을지, 스스로 만들지 정하세요 라고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곡을 만들어 받는 것은 앞으로도 많이 있을테니까... 『자아 스스로 만들겠습니다』라고 처음으로 건방진 말을 입으로 뱉었던 느낌이려나. 뭐 선택지가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만든다고 말했지만 그런 기회나 길을 준 것이 사장 본인으로, 그 감사도 있기 때문에 음악은 계속 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그만 둘지도』라고 하는 것도 쟈니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일을 하거나 함께 보내오는 가운데 인상적인 것이 10대인 어린이 입장에서도 봤을 때 어른 중에서도 이렇게 순수한 눈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라고 하는 것이 충격있었네요. 순수무구라고 하는 뭔가 그.. 강렬한 인상이 10대 시절 제 안에 있어서 주변의 어른은 매우 거짓말을 하는 눈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나 솔직한 어른도 있구나, 나도 이런 어른이 되려고 하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그 때 매우 느꼈었습니다. 그것이 아직도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순수무구한 눈이 아니게 될 것 같은 삶의 방식을 할 것 같이 되었을 때는 아마 그만두는. 아니면 그 환경에서 멀어져서 순수무구한 눈이라는 것을 소중히 하는. 또 자신의 룰이라고 하면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을 팬들이나 동료들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라고. 그것을 되돌아보면 쟈니상으로부터 배웠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쟈니상 지금 뭐하고 있을까나』라든지 신경이 쓰이는 건 그 정도에요. 가족...어머니를 걱정하는 건 있지만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꽤 쟈니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고 있는 것이겠네요 응.
조용한 그루브, 그가 경애하는 엔디 헤이젤이 연주하는 기타와 같이 말이 속시원한 리듬으로 고막을 떨리게 한다. 야가테 그것은 뇌를 경유해서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럼, 어떤 아웃풋일까? 상관하지 말지어다. 우선은 자신이 「이것이다」라고 생각하는대로 표현하면 되는. 그것이야말로 생전의 프린스가 이런 일화를 남기고 있다. 어느 세션에서 튜닝이 반음 어긋난 베이스를 건내 받았으나 사용할 수 있는 한 음을 찾아 내어서 그루브한 프레이즈를 연주해 보였다고. 요컨대 기분 좋은 소리를 울려라-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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