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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一 51/エンタテイナーの条件

[도모토 코이치] 151204 엔터테이너의 조건 # 29 모리 미츠코상이 내게 주신 것

by 자오딩 2016. 5. 20.

エンタテイナーの条件 * 엔터테이너의 조건

 

# 29

 


森光子さんが僕にくれたこと

모리 미츠코상이 내게 주신 것

 

 

 

 2012년 11월 10일에 모리 미치코상이 돌아가시고 나서 3년이 지났습니다. 모리상께는 제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공사 모두 정말로 신세를 많이졌습니다.


  처음으로 뵌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벌써 20년 이상 전. 소년대 무대 『PLAYZONE』을 아오야마 극장에 보러가서 거기서 함께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KinKi Kids로서 데뷔하기 전으로, 이쪽은 그저 어린 아이였습니다만 ㅎㅎ


  종연 후, 사무소의 사람이 모리상과 식사를 가실 때에 저도 불러주신다고 하는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어린 입장에서 보면 긴장되는 자리였습니다만 그 무렵 부터 제 얼굴을 점점 기억해주시도록 되셨습니다.

 

 


■ 데뷔 때 들은 말

 

  KinKi Kids로 데뷔할 때(97년). 모리상이 계신 곳에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악수해주시며 「파워를 보낼게요」 라고 말씀해주신 것을 매우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들 데뷔란 상당히 갑작스러움과 동시에 막연했었습니다. 주변은 착착 준비를 진행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당사자 본인은 그렇지 않았던. KinKi는 데뷔 전부터 텔레비전용으로 『Kissからはじまるミステリー』(드라마 『긴다이치 소년 사건부 』) 등 레코딩 경험은 꽤 있어서 그 일환으로 녹음 했던 것이 『硝子の少年』 (데뷔 곡). 자켓 촬영도 『硝子の少年』의 자켓이 될 것이란 것은 모른채 새로운 아티스트 사진이려나? 정도로 생각하며 찍었습니다.


  지금이 되어서는 "쟈니즈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데뷔 회견 (97년 5월)도 알려준 것은 전날. 그렇기 때문에 자신 안에서는 데뷔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갖춰져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뭐가 뭔지... 였던.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모리상으로부터 「파워를 보낼게요」 라고 듣고 겨우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그 말은 「앞으로 더욱 정신 차리고 책임을 갖고 하세요」라고 하는 격려로도 이해할 수 있어서. 당시의 저는 18세. 「데뷔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기분을 갖게 해준 한 마디였습니다.


  모리상은 엄청나게 신기한 에너지를 가지고 계셔서 함께 있으면 힘이 솟아 난다고 할까... 어쨌든 신기한 감각이 됩니다. 그것은 만났을 때 부터 계속 변하지 않았던. 잘 설명을 못하겠습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가운에서 그런 오라를 느끼게 하는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 분으로부터 들은 「파워를 보낼게요」라고 하는 말은, 얼나마 설득력이 있고, 든든했던지. 실제로 이 사람은 정말로 무엇인가 파워를 주변에 나누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나? 라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모리상의 주연 무대 『방랑기(放浪記)』 1500회 (99년 12월)의 축하 파티에 출석했을 때 단상에서 여러 사람이 차례 차례 인사 하시는 가운데 저는 모리상의 바로 옆에 서있었습니다. 20세였던 저는 「실수가 있으면 안돼」라고 너무 생각한 나머지 계속 긴장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걸 간파하신 것이겠지요. 「이런거 피곤하네!」라고 저 밖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읊조리셨습니다. 「어깨 힘 빼도 좋아」라고 하는 모리상 나름의 배려입니다.


  마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일에 대해서는 엄격한 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프인 부분에서는 매우 장난끼가 있거나 러프한 일면을 보여주셨던. 나 자신도 그렇게 있고 싶다고 생각하냐고? 저는 그저 되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 때문에 러프의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모리상은 「코이치군」이 아니라 「코이치상」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름을 기억해주신 것은 서로 이름에 "光"이라고 하는 글자가 있는 것이 계기. 「"미츠코(光子)"라고 쓰면 거기에 코이치(光一)상의 이름이 들어와」라고 자주 말씀해주셨네요.


  소년대의 『PALYZONE』은 매년 함께 보는 것이 항례 행사였습니다. 자리에 앉으실 때는 제가 에스코트. 윗 사람한테 말을 들어서 시작한 것이기는 합니다만ㅎㅎ 국민적 대 여배우의 에스코트이기 때문에 영광이고, 자랑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 내 꿈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어

 


  한 편, 의외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동업자로서의 어드바이스나 일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던 기분이 듭니다.


  제가 『Endless SHOCK』로 500회 공연을 맞이했을 때 커튼콜에서 모리상이 꽃다발을 들고 스테이지에 올라오셨던 적이 있습니다만(08년) 그 때가 제 일에 관해서 뭔가 말씀해주셨던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코이치상은 계속 꿈을 쫓으며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당신은 우리들의 꿈이니까」라는 식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화려한 쇼를 매우 좋아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연령이나 상태가 허락한다면 「자신도 하고 싶었다」고 생각하셨던 듯 합니다. 하지만 모리상이 20~30대셨던 시절은 아직 세상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내 꿈을 코이치상, 이루어주세요.」라고 프라이베잇에서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잊을 수 없습니다. 몸상태가 안좋아지고 나서도 「올해는 보러 간다고 약속 했으니까 나는 제극에 갈거야」라고. 계속 말씀하시거나 병실에 제 사진을 놓아두기도 했다고 나중에 다른 사람 편에 들었습니다. 뭐, 저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사진이 있지 않았을까나 하고는 생각합니다만 그걸 들었을 때는 조금... 말문이 막혔습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모리상은 말씀 같은 걸 하시지 않아도 옆에 있거나 뵙거나 하면 그것 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사람. 저도 항상 「말이 아니라 스테이지에서 퍼포먼스로 모든 것을 말한다」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주신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인품이었습니다. 누구에 대해서도 같은 높이로 시선을 맞추는. 자신이 좌장인 현장에서도 분명 가장 자세를 낮추셨겠구나 라는 것을 평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겠는. 같은 무대에 서는 자라면 선배, 후배라든가 연령이라든가 상관없이라고 하는 것은 저도 크게 공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모리상은 항상 그런 분이셨습니다.


  출연 무대는 여러가지 보았습니다. 『방랑기』는 물론, 『재미있는 여자(おもろい女)』라든가 히가시야마상과 공연하신 것이라든가 『방랑기』에 관해서는 하카타에도 보러 갔던. 지금, 제가 자신의 무대에서 매년 신세를 지고 있는 하카타자는 『방랑기』로 방문했던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여배우로서 모리 미츠코 밖에 내보일 수 없는 공기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느끼고 있는 것 입니다만, 제가 가장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나 존재가 있는데도 관계없이 스테이지 상에서 기척을 감추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 그게 어떤 스킬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신의 무대 인생 안에서 거기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인지.


  대담 방송으로 함께 했을 때, 제가 키우고 있던 팡(도모토 코이치의 애견, 치와와)을 현장에 데리고 갔더니 엄청 귀여워 해주시며 안아주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그 아이도 틀림 없이 굉장한 파워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훗.

 

 

(2016년 1월 호)

 


 

 

 

- 2008년 1월 6일 Endless SHOCK 통산 500회 공연에 달려온 모리 미츠코

- SHOCK 전단지를 들고 있는 모리. 만년 2012년 1월에 촬영. 이 사진은 도모토의 대기실에도 걸려있다.

- 2003년 9월 방랑기 상연 1600회의 축하로 하카타자를 찾은 도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