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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Ki Kids/雑誌

[KinKi Kids] 171226 週刊朝日 1/5-1/12 병합호 + 번역

by 자오딩 2017. 12. 26.

 

 

 


堂本光一

 


─ 쯔요시상의 발병 후, 노래 방송 등에는 코이치상이 혼자서 출연하셨습니다. 「THE MUSIC DAY」(7월 1일 방송)에서 「Anniversary」를 혼자서 부르셨을 때는 「두 사람의 노래를 혼자서 부르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다고 하신 것 같네요.

두 사람의 곡을 혼자서 부르게 되면 호흡의 타이밍도 변해오는. 평소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던 건가」라고.

 

 

─ 7월 15, 16일 에 실시된 20주년 기념 이벤트 「KinKi Kids Party!」는 코이치상은 요코하마 스타디움, 쯔요시상은 다른 장소에서 중계를 연결한다고 하는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나가세 토모야상이나 이쿠타 토마상을 시작으로 한 게스트 분들께는 코이치상께서 직접 연락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런 일이 되었기 때문에 세트리스트를 정하지 못하고 밴드는 어느 악곡이 와도 괜찮도록 연습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와주겠다고 말해준 사람에게는 「이런 상태이지만 잘 부탁해. KinKi의 곡이라면 뭐가 가능해?」 라고 리서치 해서. 나가세는 그 전에 방송 (6월 28일 방송의 「테레토우 음악제 2017」)에서 「젠부다키시메테」를 함께 불러주었기 때문에 「저 곡이라면 바로 본방에서도 가능해」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바로 본방에서 하는 것에 대한 불안은?

이미 각오 하고 있었습니다 ㅎㅎ

 


─ 코이치상의 주연 무대 「Endless SHOCK」의 테마 「Show must go on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극은 계속 되어야한다)」의 정신이네요.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요. 저희들은 2인조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라는 것」의 중압 같은 것은 옛날 부터 있었습니다. 오해없이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만, 혼자인 편이 편한 부분이란 있기 마련이지요 몸 상태가 나쁠 때도 혼자라면 뭐, 쉴 수 밖에 없는. 인원이 많은 그룹이라면 다른 멤버가 보충할 수 있는. 하지만 두 사람이라면 그렇게는 되지 않는. 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있는 숫자라고 할까. 종종 「멤버가 빠진다」같은 것이 있지만 그건 저희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 10월 29일 음악 페스티벌에서 쯔요시상이 복귀하시어 KinKi Kids로서의 음악 활동이 재개되었습니다. 18년 정웜에 걸쳐서의 도쿄, 오사카돔에서의 4공연의 타이틀은 「20,2,21」. 20주년에서 21주년에 둘이서 향해간다 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건가요.

계속 둘이서 해왔으니까요. 조금 암호적인 느낌으로 좋지 않을까 하고. 다만, 그것만이라면 알기 힘든 부분도 있기 때문에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이라고 하는 서브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해석하자면,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의미가 있다」. KinKi Kids의 20주년을 되돌아봤을 때, 혼자서 방송에 나가게 되거나, 둘이서 스테이지에 설 수 없게 된다든가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20주년을 스태프 여러분이 얼마나 북돋아주고자 하시는지, 팬 분이 얼마나 기대해주고 계신지, 깨닫게 해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후,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났을 때 「KinKi Kids의 20주년 순조로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저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쯔요시의 귀의 상태가 나쁜 것을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다」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하지만, 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는 할 수 없으니까.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현의 방식으로 라이브를 하는 것이 되는.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일어나는 일은 의미가 있다」라고 하는 생각을 담으면 좋지 않을까 라고 하는 이야기는 했습니다.

 

 

─ 코이치상은 1월 1일생이기 때문에 18년은 쿄세라돔 오사카 스테이지에서 생일을 맞이하시는 것이네요.
뭐, 세간적으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셍세요」 쪽이 중요하니까요. 어렸을 때는 가족만이 축하해주었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계속 일. 자주 「친구가 모두 모여서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같은 것이 있습니다만 인생에서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정월 생일이란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에요 ㅎㅎ


 

 

 

 

堂本 剛
 

 

─ 20주년이라고 하는 타이밍에 발병, 쯔요시상이 가장 괴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시의 심경은?
어쨌든 서둘렀으니까요. 저는 음악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고, 귀는 프로로서의 도구이기도 한. 그것이 치명적인 것이 되어있는. 입원이 정해지고 치료가 시작되기 까지의 1주간은, 가혹했었네요.

 


─ 발병 후, 코이치상과는 향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시거나?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노래 방송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전화는 했습니다. 「지금의 자신이 음정을 잡을 수 없다, 어떤 소리가 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정말로 미안하지만, 이런 상태이니 노래할 수 없다」 「자아, 혼자서 나갈까」라고 하는. 코이치뿐만이 아니라 나가세군이나 아이바짱이나 마츠쥰이라든가. 코이치와 함께 방송에 나와준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자신의 상태를 전했습니다.

 


─ 몇 년 간에 한 번이라고 하는 가장 바쁜 시기였던 것은 아닌지?
그런 말을 들을만큼 바빴던 것은 아닙니다.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병이기 때문에 모두 「스트레스가 쌓여있었기 때문에」 「지쳐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다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타이밍은 나빴던. 저보다도 주위가 당황해 했네요.


─ 「KinKi Kids Party!」에서는 요코하마 스타디움과 중계를 연결한다는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사실은 뭐가 어떻더라도 스테이지에 서고 싶었습니다. 한 곡이라도 좋으니 노래하고 싶었던. 다만, 저 당시의 저는 평범한 사람이 「어째서 이런 게?」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피아노 하나로 한 곡 노래하는 것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라고 하는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절대로 가능한건지?」라고 한다면 솔직히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죠. 아직 퇴원해서 10일 정도였으니까. 「이거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해」 「자아, 이건?」 「그건 불가능해」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하고, 부딪히거나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런 형태로의 출연이 되었습니다.

 

 

─ 「치료 하고 싶다」라고 하는 마음과 「무대에 서고 싶다」라고 하는 마음, 그 싸움이었던 것인가요.
싸움도 있고,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니까요. 치료는 빠른 사람이 1년, 길면 5년 정도 걸린다고 하고, 완전히 나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다만, 「음악을 할 수 없다」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요점은, 폭음을 듣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혼자서 곡을 만들거나, 대음량이 아닌 작은 스테이지라면 지금도 설 수 있으니까. 물론, 이전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렉트릭 기타를 치면서 노래한다, 춤추면서 노래한다 라든가 동시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현상 속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없을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머리가 좋고, 효율도 좋으니까요.

 

 

─ 현재의 쯔요시상의 증상은?

식기가 덜그럭 덜그럭 하는 소리라든가, 높은 음은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만, 한가운데 소리나, 더 낮은 소리, 남자 목소리라든가, 악기로 말하자면 베이스라든가, 파도 치는 소리 같은 것은 아직 난청입니다.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오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잘 모르고, 음량이 커지면 소리가 배로 증폭하여 머릿속에서 울려요. 그렇기 때문에 노래하면서도 소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그래도 지금은 일상 생활은 괜찮습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요. 맨처음 무렵은 건널목 경보 소리 같은 것도 매우 머리에 울려서 밥을 먹으러 가도 사람이 재잘재잘 말하고 있는 소리나 식기 소리가 강조되어 피곤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왼 쪽 귀에 귀마개를 하고, 오른 쪽 귀만으로 생활하거나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재활로써, 오른 쪽 귀에 귀마개를 하고 왼쪽 귀에 헤드폰을 하고 크지 않은 음량으로 듣거나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선수가 고장을 보완하기 위해서 트레이닝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네요.

 

 

─ 끈기있게 치료해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네요.

하지만 모두가 생각하고 계시는 정도로 초조하게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어찌되도 상관없어」같은 생각도 있는.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소용없는 거네요. 이런 상태가 되어, 여러 사람에게 지지받고 사랑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해준다거나가 아니라 정말로 가족이 되어 마음을 이해해주고자 하는 자세, 그것뿐인거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은 건 가족이어도 모르는 것이니까. 엄마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나」라고 하셔도 「이야, 아무 것도 안해도 되니까」같은ㅎㅎ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팬 분이 신사나 절에서 기도해주셨다고 듣거나, 편지를 받거나, 그런 것도 기뻤네요. 지지해주셨습니다.

 

 

─ 팬 분들께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은 것은?

라디오에서는 꽤 솔직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전부 전해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어렵지만 그건 정말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저는 지금 자신에게 「조금 무거운 이야기지만」「어두운 이야기가 됩니다만」이라든가 그런 수식어가 붙는 게 분하네요. 저는 이 상태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빛을 찾고 있습니다. 현상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이런 상태를 전부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팬분께 진심의 말을 전하고, 진심으로 마주한다고 하는 것은 제 인생의 목표 중 하나니까.

 

 

─ 지금, 쯔요시상의 프라이베이트에서의 위안은?

확실히 말해서 지금은 없네요. 이 다음 돔에서의 라이브가 있기 때문에 괜히 느슨한 기분으로 살고 있으면 리듬이 이상하게 되는. 긴장하고 있는 건 아지미나, 릴랙스나 치유 받자 라든가, 생각하고 있지 않네요. 제게 있어서 「재활」이라고 생각하며 스테이지에 서는 일은 없으니까. 1월 1일 라이브가 끝나고나서 드디어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