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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Ki Kids/雑誌

[KinKi Kids] 170719 an·an No.2062 + 번역

by 자오딩 2017. 7. 26.

 

  

 

 

 

KinKi Kids × 음악

 

 

 


Domoto Koichi

 

 「硝子の少年」이 저희들의 음악의 토대로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데뷔 당시 쟈니상과도 「멋지네」라고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멜로디어스한 애수가 있는 악곡으로 데뷔를 하고 「愛されるより 愛したい」 등, 그 세계관을 계승하는 악곡을 불러왔던. 그 후, 「Hey! みんな元気かい?」로 음악성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어 솔직히 "어디로 가는거?"라고 망설였던 것도 있었습니다. 계속 "정성스럽게 멜로디를 부른다"라는 것을 소중히하고 있던 것에 비해 이 곡이 가진 맛은 던져버리는 듯한 러프한 가창법을 하는 부분이 있는. 노래를 잘 하지도 못하는 제가 불러버리면 "정말로 못부르는구나 라고 생각되지 않을까"라는 공포도 있었어요. 그래서 반골정신이라고 할까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무너뜨리지 않는 곡을 부른 편이 좋지는 않을런지"라고 하는 제 나름의 제시로서 만든 것이 B면의 「愛のかたまり」였습니다. 하지만 「Hey! みんな元気かい?」는 어느새인가 매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밝은 듯 하면서 강한 쓸쓸함도 갖추고 있는, 신기하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곡. 라이브에서 노래하고 있어도 기분이 좋은. 싱어송라이터 분이 만든 곡에는 개성과 에너지가 있어서 좋아합니다.

 

제 안에 곡이 탄생할 때에는 몇 가지인가 패턴이 있습니다. 음악은 세상의 여러 곳에서 울리고 있고 그 키를 듣는 사이에 리프나 리듬이 생겨 보이스 레코더로 녹음하는 경우도 있는. 하지만 그건 상당히 드물어요. 대체로의 경우는 「만들자」라고 자세를 잡고 컴퓨터를 열고 기타를 치면서... 라고 하는 느낌입니다. 기본적으로 "할 마음이 생기면 한다"라고 하는 입장입니다만 이런 것이란 행복한 일이네요. 아티스트 분은 일이기 때문에 만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치사하지요ㅎㅎ

 

솔로 제작에서는 믹스 작업 현장에도 반드시 갑니다만 "여기 음을 0.5데시벨 바꿔보자"와 같은 디테일한 조정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음악이라고 느껴주실 수 있도록 가능한한의 노력을 하고 싶은. 그 자세는 앞으로도 계속 바꾸지 않고 지켜가고 싶습니다.

 

제게 있어서 음악이란? 그건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왜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요. 노래든 댄스든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노래"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는. 똑같은 곡이어도 "우리들이 부르기 때문이야말로 그렇게 된다"라고 하는 부분이 필요. 그런 노래를 목표로 하는데는에... 정말 말이죠, 열심히 노래할 수 밖에 없습니다ㅎㅎ

 

 

 

Domoto Tusyoshi

 

데뷔 당시는 너무나도 바빠서 「硝子の少年」의 가사나 곡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부르거나고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 때 마다 어느 연대가 되어도 부를 수 있는 악곡을 제공받았구나 라고 실감하도록 되어왔던. 마이너 코드로 우울함이 있는 곡이기 때문이야말로 오래 계속 노래할 수 있는. 그런 데뷔곡을 받을 수 있어 정말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곡을 하신 야마시타 타츠로상이 얼마 전 제 레코딩에 기타로 참가해주셨습니다. 게다가 우연이, 「硝子の少年」을 녹음한 스튜디오에서. 그로부터 20년, 「네가 Funk를 좋아하는 뮤지션이 되어 기뻐」같은 말씀도 해주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희들은 대선배 분들과 함께 하는 기회가 많아 요시다 타쿠로상도 인생에서 만난 멋진 사람. 작곡을 해주신 「全部だきしめて」도 나이를 먹을 수록 저며들어오는 가사이고 공연해주신 음악 방송 「LOVE LOVE あいしてる」는 기타를 시작한 계기로도 되었습니다. 너무 바쁜 매일 속에서 인간불신이 되거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이 되어있던 당시, 저를 이 자리에 남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이 음악이었습니다. 저 때 저 방송이 있어 많은 뮤지션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KinKi Kids로 처음 만든 곡은 「好きになってく 愛してく」. 코이치가 좀처럼 곡을 만들지 못해 어떻게든 만들게 하고자 「LOVE LOVE あいしてる」에서 합숙을 갔던 추억이 있습니다ㅎㅎ 저는 작사를 했습니다만 그 무렵은 여러 뮤지션과 만나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가 아마 그 분들에 대한 감사를 썼던 느낌이 드네요.

 

둘이서 만든 곡 중에서 「愛のかたまり 」는 첫 여성시. 이런 식으로 생각받을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네, 같은 것을 생각해 썼을려나. 당시는 다자이 오사무 등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 깊은 세계관이 반영되어있었을지도.

 

싱글로 저희들이 만든 최근의 곡이 되면 '10년에 릴리즈 한 「Family 〜ひとつになること」. 이건 가족이나 동료의 소중함을 잊고 있지는 않은신가요? 같은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자신의 가사를 돌아보면 옛날은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습니다.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느낌이 매우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혼잣말.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로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다음에 킨키의 노래를 만든다고 하면... 너무 막연해서 지금은 아무 것도 나오지 않지만 써도 좋다면 언제라도 쓸거에요.

 

 

 

 

 

Special Interview

 

작사가 마츠모토 타카시로부터 KinKi Kids 에게

「유리의 소년」들과의 20년

 

 

KinKi Kids의 데뷔를 맞이하여 쟈니즈 사무소 쪽에서 "굉장한 거물 신인이 있으니 잘 부탁합니다"라고. 칸사이권 출신의 2인조로 한 사람은 효고, 한 사람은 나라, 이름은 「KinKi Kids」. 제 사전 정보는 그 정도였습니다. 당시, 저는 작사 일에 공백이 있어 '80년대 상당히 열심히 하다 힘에 겨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90년대에 들어와서 5~6년 정도 쉬고 있었어요. 아직 자신에게 상품 가치가 남아있는 것일까나? 같이 조마조마 하면서 만든 곡이 매우 팔려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처음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 어떤 공략을 하면 좋을지 몰라 고생하고 있었던.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자택의 2층에 있던 서재에서 계단을 내려가 거실에 들어갔더니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었는데 우연히 두 사람이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던. 무슨 곡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硝子の少年」을 쓰기 전이었으니... 뭔가의 커버 곡을 말이죠. 그걸 보고 "이 아이들, 유리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리의 소년」이라고 하는 타이틀이 떠오르자 거기서부터 와앗 하고 완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곡에서는 「콘지키야샤(金色夜叉)」(오자키 코요우(尾崎紅葉)가 메이지 시대에 발표한 소설)을 테마로 하고 싶다고 생각해 지금이라면 어떤 이별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까지 "철도"는 많이 써왔기 때문에 장거리 버스가 새로울지도 몰라, 신주쿠역 서쪽 출구 부근에 사람이 대인원으로 모여있는 것을 보고 이런 장소에서의 커플의 이별도 있겠지, 라고. 그 때까지 그런 곡도 없었고 말이죠. 현실에는 있지만 노래로는 되지 않은 사상을 쓰면 크게 히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과 비다마(ビー玉, 유리구슬). 저는 때때로 사어를 사용하거든요ㅎㅎ 모두가 잊어버렸지만 일종의, 어느 세대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억의 포인트로 되어 있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히트하거나 합니다. 아마 나와 동세대 정도가 비다마에 반응해서 지지해준게 아닐까나? 「유리의 소년」을 처음 들었을 때 히트하겠지 라고 하는 감각은 있었습니다. 왜냐면 두 사람이 엄청나게 노래를 잘했기 때문에. 하지만 저, 지금도 「유리의 소년」은 3일 정도 전에 쓴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 정도로 소중한 곡이라고 하는 것이겠죠. 공백이 있은 뒤, "아직 히트 작사가이구나"라고 제 자신이 구원받은 곡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악곡의 무엇을 어떻게 만들면 후세까지 남을까나 라는 것은 모르는 일로, 길이 남는 작사 방법론 같은 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은 남는다" 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묵묵히 계속해서 만들면 분명 남을 것이 틀림없다고 하는 수수한 기대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해온 것도 그것 뿐. 「유리의 소년」은 20년, 30년으로 남을 악곡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계속 부르면서 지금도 오래되지 않고,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멋있게 들립니다. 생각해보면 희유한 일입니다.


'09년 릴리즈된 「스완송」은 저의 "백조 펫치"를 담은 곡. 대천재 안나 파블로바(20세기 초에 활동한 러시아 발레리나)가 춤춘 「빈사의 백조」에 동경하고 있어서 기회가 있다면 "스완송"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과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일본에서는 야마토 타케루가 백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이야기. 크게 말하자면 이 3가지의 제가 매우 좋아하는 "백조"를 합쳐놓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고 헤어지게 되었을 때, 격한 드라마가 탄생하는. 그것이 너무 격하면, 그 다음은 조용하게 되어가서 색도 사라지고 백조가 나는 듯한 아름다운 것이 되는. 그런 것을 쓰고 싶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가사가 완성되어버린. 그림을 그릴 때는 대상의 그림자 부분을 열심히 그려가면 그것의 형상이 입체적으로 떠올라옵니다. 가사에도 그런 점이 있어서, 그림자를 그리는 것으로 전체가 입체적으로 되어가는 거네요. 그런 의미에서도 「스완송」은 잘 만들어진 곡일지도 모릅니다. 이 가사에는 원근법도 구사하고 있어서 크레인도 10대 정도ㅎㅎ 클로우즈업, 완전 클로우즈업,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마지막 부분은 배에서 부두를 보거나 해서. 카메라 워크도 굉장해요ㅎㅎ


KinKi Kids 두 사람이 정반대의 캐릭터인 것도 매력의 하나이겠죠. 두 사람이 비슷하다면 재미없을거에요. 반짝반짝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인간스러운, 깊이라고 할까나, 그림자 부분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도 훌륭한. 외모는 저런 클래스의 초 A급 아이돌이라면 모든 게 좋은 거에요. 하지만 목소리는 또 다른 이야기.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같은 말을 듣고 있던 시대에 KinKi Kids라고 하는 음악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나왔던. 멋있음과 음악성을 갖추고 있는 KinKi Kids는 강한.

 

이건 전에도 어딘가에서 말했었지만 두 사람 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도 매우 좋죠? 코이치군은 스스로 뮤지컬을 하고 있고 쯔요시군은 솔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두 사람 다 자신의 입장을 지키면서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향상심도 있고, 꾀를 부리지 않는. 건전한 야심은 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지키면서 앞으로도 힘내! 라는 느낌이려나. 자신들의 발로 걸어간다고 할까, 올라간다고 할까. 그들은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